세종실록 15년기사에 보면 백성에게 술을 삼가라는 계주문(戒酒文) 속에서 '신라는 포석정에서 망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망했다'는 대목을 볼 수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쳐들어 왔을때 신라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주 금오산 서쪽 두메에 있는 포석정은 신라의 귀족이나 상류층이 나라 생각을 않고 유흥으로 지새운 망국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에 따라 그렇게 악용될 수는 있었겠지만 포석정의 본래 뜻은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의 술 마시는 방법이 같지 않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마시고싶은 만큼 자신이 따라 마시는 자작(自酌)문화권, 건배!를 외치며 더불어 마시는 대작문화권, 그리고 술잔이 왔다 갔다 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는 수작(酬酌)문화권이 있는데, 우리 한국은 희귀하게 수작문화권에 속하는 그 종주국이다.
한 잔 술에 입을 더불어 대고 마심으로써 마음을 맺고 일심동체를 확인하는 의례가 바로 수작인 것이다. 우리 전통혼례의 절정이 한 잔 술에 신랑-신부가 더불어 입을 대는 합근례인데 바로 수작이 인간결속의 상징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포-하면 서민적인 음주의 대명사처럼 돼있지만 실은 한 마을 사람끼리 한 직장 사람끼리 동업자끼리 일심동체를 다지기 위해 돌려마셨던 대형(大型)의 술잔이 대포였다. 옛 관아에는 서로 다른 미명(美名)의 한 말들이 대포잔이 있어 인사(人事)가 있거나 공회(共會)가 있을때마다 그 한 잔 술을 더불어 나누어 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졌던 것이다.
기록에 보면 사헌부의 대포잔은 아란배라 했고, 교서관의 대포잔은 홍도배, 예문관의 대포는 장미배, 성균관의 대포는 벽송배라 했다. 시사같은 풍류객들의 모임에서는 연종음을 했다. 연잎에다 술을 채우고 연대에 구멍을 뚫어 그 연대를 통하여 돌려마시는 식물성 대포인 것이다. 탕아들은 기방에 모이면 화혜음을 했는데 기생의 꽃신에다 술을 따라 돌려마셨으니 가공할 대포문화가 아닐 수 없다. 단단히 결의를 한 사이를 대포지교라 함도 한 잔 술 더불어 마시는 정신적 효과가 얼마만한가를 암시해 준다.
따라서 돌홈에 대포잔을 띄워 공음하였던 포석정은 망국의 현장이 아니라 군신간에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너무나 한국적인 의식의 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석정 돌홈에 잔을 띄워 그 유속을 실험했더니 공음하기에 가장 알맞는 속도였다는 보도가 있어 포석정의 정신적 배경을 들추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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