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전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태양시 (Sun City)에 들렀던 일이 있다.
노인자치시랄 수 있는 이 특별시 인구는 7천명으로 하루에 네댓시간만 품을 팔면 먹고 살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돼있었다. 많은 외부 기업체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수공업적인 일을 이 태양촌에 맡겨오기에 품팔기가 어렵다는 법은 없다. 주민들로 시의회가 구성되어 있고 백발의족의 교통순경도 있었다.
이 할아버지 순경은 할머니가 지나가면 교통 정리할 생각은 않고 붙들고 잡담하는 바람에 의회에서 경고를 받은 끼가 있는 노인이라 했다. 자치사무소, 교회, 은행, 우체국, 의료센터, 쇼핑센터, 장의사 등을 경력있는 노인이 운영하고 있었으며 <태양촌 뉴스>라는 신문도 기자출신의 노인에 의해 발행되고 있었다. 이 신문에는 주로 여가활동을 위한 안내가 실려있었는데, 도예, 목공, 스케치, 합창, 클래식감상, 시감상 등 다양하고 손수 소채나 꽃을 가꾸는 농장도 대여해 주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는 도처에 이 노인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노인인구의 약 20%인 5백만명이 이 실버 타운에서 살고 있다 한다. 1980년 전후의 중류층 노인촌에 살기 위한 경비는 대충 이렇다. 침실이 둘인 맨션 구입비가 5만달러, 노인촌 입촌비가 2천달러, 매월 생활비가 부부간에 1천달러 정도였다. 실버 타운의 이름도 노인촌, 태양촌, 은퇴촌 등 백화난만이다. 화석인촌, 백발촌, 인생주막촌, 즐거운 과부촌 등 자조적인 이름도 없지 않다.
중국 노인촌인 경로원의 평균 연령은 70세다. 숙사, 식당, 오락실, 구매부, 이발실, 욕실, 의무실 등 시설이 돼있으며 노인에 알맞은 일을 맡기고 있다. 이를테면 북경근교 남원경로원의 노인들은 페킹 덕의 요리용 오리를 길러 자활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가 한국에 왔을때 이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노인 복지가 가장 잘돼 있었던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은 서양학계에서도 상식이 되어있다는 말을 했다. 아마 효도가 생활화돼 있었음을 두고 말함일 것이다. 그 복지지상의 나라에서 자기 어머니를 업어다 제주도에 버리고 이민 가버린 자가 있는가 하면 노모를 청부살인시키는 자까지 출현하고 있는 작금이다.
건설부는 노령인구가 전인구의 15%까지 차지하게 되는 2000년대에 대비하여 도시근교에 자활과 취미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중산층용 실버 타운을 세울 것을 계획하고 있다 한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도 이 노인촌이 지상계획단계(紙上計劃段階)에서 증발되었던 일이 생각난다. 실천 여부를 지켜볼 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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