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시 '이부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단청으로 곱게 그린들 무슨 소용이랴/말 못하고 웃지 못하고 보는 이만 수살하노니." 한나라 무제가 이부인을 잃자 사모하는 마음 가눌길 없어 초상화를 그리게 했지만 그림 속의 이부인은 말하지도 웃지도 않고 그저 보는 이의 마음을 애태우게 할뿐이라는 뜻이다. 수심의 극한을 죽인다는 살벌한 뜻글자인 살자로 표현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소살-매살-투살이란 말도 있으며 가혹할 정도로 한가함을 한살이라고까지 했으니 대단한 극단표현 문화다.
대만에서도 사람 웃기지마 할때 소사인, 정말로 놀랐다 할때 경사인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 극단 표현문화가 한문을 타고 우리 나라에 도입되어 묵살-뇌쇄-말살같은 살벌한 말을 전혀 살벌하지 않게 쓰고들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전래문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 한국에는 매사를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처리하는 성깔이 강하게 체질화돼 있었다. 부부간에 싸움이 붙었다 하면 너죽고 나죽자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아이들은 싸움이 붙었다면 죽여버리느니 죽을줄 알라느니 죽음 동사가 난무하지만 티끌만큼도 죽인다든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위구호 가운데 뭣뭣 아니면 죽음을 달라느니 결사반대니 등 극한을 표방하지만 표방한대로 죽는 경우는 드물다. 집안 싸움끝에 화를 가눌길없어 세간살이 들어깨는 것쯤은 있을 수 있지만 자기집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 행위를 하는 것은 우리 한국사람뿐이 아닐까 싶다. 홧김에 왜 서방질을 하며 빈대잡기 위해 왜 초가삼칸을 태운다는 말인가.
한 여름에는 남태평양의 열기단이 지배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냉기단이 지배, 혹서-혹한의 양극을 되풀이 하고 평온하다가도 태풍-폭우-홍수-눈보라가 몰아치고 땅을 촉촉히 적시다가도 초목을 말려죽이는 가뭄이 몇달을 계속하는 등의 극에서 극으로 표변하는 풍토가 극단의식을 형성시킨다고 풍토학은 설명하고 있다. 어제 한강 인도교 철제빔 위에 한 가정주부가 기어올라가 형제간 우애가 이럴 수가 있느냐고 호소하다가 구조되었다.
일전에는 가출한 아내여 돌아오라고 한 가장이 이곳에서 시위했었다. 근간에 지리산 양수댐 건설에 반대한다는 대형 플래카드를 매놓고 그 끝에 매달려 연막을 피우며 시위하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한 도의원은 광산노동자의 갱내 작업의 고통을 알리고자 거대한 갱목을 등에 지고 도심을 기어가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인의 극단의식이 시위문화를 타고 분출하기 시작한 것일 게다.
[이규태 코너] 백록(白鹿) (0) | 2007.02.16 |
---|---|
[이규태 코너] 백채(白菜)와 청채(靑菜)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무궁화(無窮花)와 일본(日本)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포석정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실버 타운 (0) | 2007.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