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 행차요. 길을 비껴라!"고 종들이 춤추듯 팔을 저으며 길가는 사람을 젖혀 길을 텄던 것이다. 선조 때 정승 이항복이 정무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길 앞을 가로지르던 여염의 한 여인이 벽제에 걸려 땅바닥에 넘어져 굴렀다. 시쳇말로 교통사고가 난것이다. 이 여인은 인권의식이 대단했던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호동 이정승댁까지 뒤따라와 욕설을 퍼부어댔다. "머리 허연 늙은 것이 종들을 풀어 길가는 아녀자를 넘어뜨려 짓밟으니 네가 정승이 되어 나라 위한 것이 뭣이 있다고 이런 위세를 부리느냐"고-.
마침 그 자리에 손님이 와있었는데 그 여인의 욕설을 듣고 깜짝 놀라 "왜 내쫓거나 잡아들이거나 할 일이지 욕설을 듣고만 계십니까. 벽제는 법도요 그 법을 지키다가 일어난 일이지 고의로 넘어뜨린 것이 아님에랴" 하자, 이항복은 법과 사람을 두고 저울질할 때 사람 쪽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하는 것이라 하고 법으로 따지면 잘못이 없지만 인간측면에서 보면 잘못이 없다할 수 없으니 실컷 화나 풀고 가게 놔둔 것이라 했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잡다한 교통문제의 기본철학을 제시해 준 것이 된다. 한국에서 10여년의 운전경력이 있는 베테랑이 영국에 가서 운전면허시험을 치르는데 운전상 아무런 실수나 결함이 없었는데도 연달아 다섯번이나 낙방을 했다. 면허를 딴후에 그 동안 낙방한 까닭을 물었더니 운전을 잘하고 못하고 하는 기량을 시험당한 것이 아니라 운전하는 인간으로서의 질이 양질이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시험당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달리다가 속도를 늦출 경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후속차에 그것을 알리지 않아 낙방, 건널목에서 늦게 걷는 보행자나 개를 보고 인상을 쓰거나 경적을 울렸다 해서 낙방, 후속차의 깜박이나 속도등을 백 미러나 사이드 미러로 확인하지 않았다 해서 낙방, 잠깐 멎었을 때라 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고 낙방, 행인이 미소짓거나 손을 흔들고 가는데 무표정하게 응답하지 않았대서 낙방-하는 식이었다. 곧 운전능력이 아니라 운전인격을 시험한 것이 된다.
교통질서나 교통도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후진국형이라면 잘 지켜지는 것이 중진국형이요, 법이나 규칙보다 인간위주로 영위되는 교통 질서와 도덕이 선진국형인 것이다. 비인간적으로된 교통시설이나 관행-규칙을 시정하며 운전자의 마음가짐을 자기 본위에서 남들 본위로 전환시키는 등 차보다 사람을 우선시키는 녹색교통운동이 오늘을 기해 시작된다니 성공하면 후진국형에서 중진국형을 거치지 않고 선진국형으로 비약하는 것이 되니 좀 좋으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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