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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백록(白鹿)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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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지금 경기도 평택 서탄면 금암마을의 한 꽃사슴 농장에서 흰사슴 한마리가 태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만약 이 백록탄생이 백년전에만 있었던들 나라 안이 시끌벅적했을 일대 사건이었다. 흰사슴은 곧바로 비단옷을 입혀 임금님에게 바쳐졌을 것이고, 조정에서는 상서롭다 하여 나라 안의 모든 죄수를 풀어주며 전국의 노인들에게 주과를 하사하는 등의 행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돌연변이에 의한 변종이라 하여 별반 반가워 하지도 않고, 또 여느 사슴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 하니 백록무상이다.
 
이미 한나라 때부터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포학하면 하늘은 이를 경계하여 천재지변으로 응징하고, 성덕을 베풀면 하늘은 이를 가상타 하여 상서로운 조짐을 보이는데, 그 서조가운데 하나가 바로 흰사슴의 출현이다.
 
이 서조사상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백록이 나타나면 꼬박꼬박 정사에 적어남기고 있다. 신라 태종 2년에 지금 춘천지방에서 백록을 임금에게 바치고 있고, 고구려 태조왕 10년에 임금이 사냥하는데 백록을 얻었기로 이를 상서롭다 하여 대사령을 내리고 있다.
 
조선조에는 세조 3년에 황해도에서 흰사슴을 바치자 신하들이 무리지어 경사스러움을 칭송했고 이승소는 '백록송'을 지어 바쳤다. 이솝 우화에서 사슴은 매사에 조심성은 있으나 허영이나 허식에 잘 속아넘어가는 줏대없는 짐승이요, 희랍신화에서도 감언이설에 약한 인간으로 비유되고 있다.
 
흰사슴은 더욱 형편이 없다. 영국 시인 예츠의 시에서 뿔없는 흰사슴은 분별없는 여자의 정욕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흰사슴이 죽을 때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은 사랑에 병든 마음을 낫게 하는 약으로, 셰익스피어가 백록의 가치를 애오라지 구제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에 비해 우리 한국에 있어 사슴은 긍정적이다. 사슴뿔이 봄에 돋아나 자라서 굳었다가 이듬해 봄에 빠져 다시 돋아나길 거듭하기에 장수, 재생, 영생을 상징, 십장생의 하나로 벽에 그려 보고, 베개나 주머니에 수놓아 베고 차고 다녔던 것이다. 또 하늘을 향해 뻗어오르는 녹각의 모습이 신의 뜻을 감지하려는 안테나로 여겼음인지 신성매체로서 무당이나 추장이나 임금이 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했었다.
 
경주고분 출토 금관들의 출자 구조가 바로 북방계 통치자들의 녹각 머리 장식에서 비롯되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여염에서도 녹각부적을 허리춤에 차고 다녔던 것으로 미루어 사슴은 불행과 병을 예방하는 주력을 가진 상서로운 짐승이었다. 그 사슴이 1천년을 살면 청록이 되고, 다시 청록이 5백년을 더 살면 백록이 된다했으니, 백록출현이 국가 차원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음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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