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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

한국의 名詩

by econo0706 2007. 2. 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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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클립아트

 

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찾아 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로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로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뭇가지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 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 드리운 성자 같은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행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지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바람처럼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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