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로서는 대소사에 여론을 존중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어늘 무슨 일을 결정함에 인민의 비판 듣기를 오히려 기피하는 경향을 조선에서 왕왕 목도할 수 있는 것은 실로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실행에 미치어 이해관계가 깊은 인민간의 이의나 반대에 조우하게 되는 경우에 『기정방침(旣定方針)』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일축하는 예가 없지도 않다. 만일 인간의 지혜에 스스로 한계가 있고 사회의 진보를 따라 이해관계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을 시인한다면 무비판한 복종만을 요구하는 정치는 참으로 위험할 것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금번 철도국에서는 작업기능의 단일화, 합리화를 목표로 전조선 사백여의 역명표시판에 사용하는 조선자, 일본자, 로마자 등을 전폐하고 한자 일종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수만원의 경비를 투입해서 실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철도국이라면 다른 정치기관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서 경영수입을 그 일반의 목표로 삼는 것이니 인민을 대하는 태도도 관청의 호령(號令)으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상인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같이 해서 오직 친절함으로써 주지(主旨)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같은 중대계획을 하면서 민간의 여론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 대번에 결정해서 실행한다는 것은 너무 관청에 인습되어 자기의 사명을 망각함이 아닌가 한다.
첫째 조선에 있어서 조선자, 일본자, 로마자를 동일시하는 것이 일대(一大) 착오이고, 또 작업기능의 단일화, 합리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수만원의 경비를 사용해가면서 고유한 조선자를 일부러 삭제하는 것이 결코 합리적 처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인으로 말하면 거의 그 전부가 의무교육을 수료하여 상용하는 한자를 사람마다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역명 등에 가명(假名)을 삭제한대도 불편을 크게 느낄 것이 없겠고, 구미인으로 말하더라도 여행객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로마자의 표기 여부가 큰 문제가 아니 되는 바이나 조선인으로 말하면 많은 수가 문맹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이제 전조선내 열차이용객의 통계를 볼 것 같으면 재작년 1년간에 국유철도 승객만이 1967만여에 달하고 다시 여기에 사설 철도의 승객을 더하면 넉넉히 이천 수백만에 달할 것이오 그 중에서 조선인을 약7할 정도로 본다면 조선인의 열차승객이 매년 천오백만 내외에 달할 것이다. 그러면 이 천오백만 내외의 조선인 가운데 한자를 독해하는 자가 과연 몇 백만이나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매 철도국의 이 계획에 대해 스스로 송연(悚然)해진다.
최근 농촌진흥운동의 관계상 문맹퇴치의 필요를 통감하고 (2행불명) 각 농가에 배부하였다함은 실로 그럴듯한 일이다.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지 못한 조선에서는 이러한 방법이라도 사용되어 조선자 이용의 열매를 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당국의 방침 수행에도 또한 필요한 까닭이다. 이제 철도국이 계획하는 바 역명표시판의 조선자 삭제는 대다수의 열차여객인 조선인에게 막심한 곤란을 주는 동시에 철도국 자신도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도 철도국에서는 기정방침이라 어찌할 수 없다고 할 것인지 우리는 한 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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