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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바혁명의의 - 『조선중앙일보』1933.9.10

社說로 보는 근대사

by econo0706 2007. 2. 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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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바는 인구 360만 면적11만여 평방 킬로미터의 작은 섬나라로 명의(名義)만은 독립국이나 기실 미국의 반식민지에 불과하여 국제정치에 관련이 희소하였고 오직 사탕과 연초의 출산지로 그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 큐바가 최근 자주 혁명의 소식을 전해주어 가뜩이나 불안한 세상에 소요를 더 보태고 있다. 그러면 큐바인민이 어찌하여 혁명을 기도하며 큐바혁명이 과연 어떠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먼저 규명하는 것이 오직 큐바를 이해하는 데 절대로 필요할 뿐 아니라 세계의 동태를 관찰하는 데에도 귀중한 재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2.


큐바혁명의 첫소리는 지난 8월 6일 수도 하바나시를 비롯하여 큐바 섬 전체의 총파업으로 개시했다. 세계경제공황의 영향을 미국의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 만큼 큐바의 불경기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사탕국, 연초국의 큐바로서 미국으로 붙어 오는 생산물가격앙락(昻落)의 영향은 실로 예상 이상에 도달하여 연내 큐바인민의 경제적 생활은 거의 파멸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여기에 따르는 통치 방법으로는 이 역시 큐바의 파씨즘이라고 할는지 혹은 미제국주의의 세력관계라고 할는지 독재정치가 아니될 수 없었다. 이리하여 미국의 절대원조를 받는 바로 말하면 미국의 괴뢰인 전대통령 마챠드는 취임이래 7년간에 철저한 독재정치를 단행하여 큐바의 자유주의 분자로서 그에게 암살된 자가 이십여명에 달하고 망명 혹 투옥된 자는 헤아릴 수도 없게 되었다. 이에 큐바 인민의 쌓인 분이 폭발되어 독재자 마챠드는 필경 미국에 망명하고 큐바의 제1차 혁명은 대체로 성공된 셈이었다.


3.


그러나 제1차 혁명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든지 흔히 불철저하게 되는 것으로 큐바의 제1차 혁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혁명정부 내에는 마챠드의 잔당이 각부분 남아 있어 진정한 혁명당 이외의 중간자가 이 잔당들과 합작하여 큐바인민의 의사를 대표하지 못하고 미국과 타협하는 경향이 점차로 농후하게 되었다. 이에 제2차 발동의 운명을 가지게 된 큐바의 혁명은 드디어 지난 4일로 돌발하여 현역 육해군 장교와 경관들이 큐바혁명당 ABC당에 가담하고 데베네체리 대통령 이하 현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크로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명군임시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정부 각 기관을 점령하고 역시 유혈없이 혁명은 성공케 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미국 간섭은 전례와는 판이하여 전후 25척의 미군함이 하바나항에 급송되고 미대통령은 사태의 여하에 대하여 최후의 행동도 불사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크로위원장은 말하기를 [우리들의 목적은 단순히 미국대사관에서 작성한 헌법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신헌법을 제정하여 큐바인민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데 있다. 그리고 국제채무나 조약을 거절할 의사는 없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가긍현명(可矜賢明)한 언사이냐. 미국의 공갈이 오히려 그치지 아니한다면 큐바의 혁명은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4.


큐바각지에는 혁명 발발에 따라서 인심이 약동되어, 각 공장, 광산의 파업이 성행하고 대미 적개심이 높아져서 타도미제국주의의 시위운동이 잦으며 공산당원의 회합이 공개되어 일층 미국의 신경을 긴장케 한다고 한다. 제1차 혁명에서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제2차 혁명에서 중간당을 타파하여 바야흐로 혁명도상(途上)에 오르고 있는 큐바의 인민은 장차 어떻게 해서 미국 자본과의 청산을 완전히 하고 큐바인민의 진정한 자유를 회복케 될 것인가. 큐바 혁명의 의의는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그 진로 여하가 세계 정세에 끼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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