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농업 조선에서 공업 조선에』. 신춘이래 새 조선의 얼굴은 제법 명랑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관북을 중심으로 야구계(野口系)의 제(諸) 공업이 착착 진보 되어 감은 물론이요, 전남을 무대로 삼계(森系)의 진출이 눈에 뜨이며 종방(鐘紡)이 각지에 공장을 시설하고 왕자제지(王子製紙)의 활약과 다사도(多獅島) 철도의 신설 등등은 모두 「공언조선」 건설의 활발한 전주곡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리하여 누(累) 100년 봉건적 농업체계에서만 생활하던 조선과 조선인은 이제 바야흐로 낯선 자본주의의 파도를 타고 생활의 항정(航程)에 오르게 되려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2.
이와같이 중대한 전환기에 제(際)하여 조선인은 어떻게 처하여야 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눈앞에 놓인 가장 급히 해결을 요하는 큰 문제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조선인은 자본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자본이 없이 자본주의의 조류에 타게된다 함은 아무리 운명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억울한 시련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면 어찌할까. 조선인은 이 현실을 무시하고도 능히 생활을 하여 갈 수가 있을까. 노도와 같이 팽배(澎湃)히 밀려드는 이 조류를 대안(對岸)의 화재와 같이 등한시할 수가 있을까. 힘에 부치는 일이니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 하여 부전이패(不戰而敗)를 자취(自取)하여서 될 것인가. 아니다. 조서인도 현실에 사는 이상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동시에 소위 공업 조선운동이 누구의 손에 의하여 운전(運轉)되든지 가능한 한도까지는 조선인도 이에 참가하지 아니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3.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중대한 난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금일 사회에 있어서는 사업의 독점이라는 크나큰 폐풍(弊風)이 있으니 조선의 금일에 있어서도 이 폐풍은 불행히 이미 만정(蔓廷)되고 있다. 보라, 방금 창립중에 있는 북조선의 모 회사는 자본금 2천만원으로 40만주 중에서 겨우 5만주를 공모한다 하며 이미 불입(拂翔)까지 마친 조선제련(朝鮮製鍊)같은 회사도 자본금 1천만원으로 20만주 중에서 겨우 2만주를 공모에 부치었을 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자본이 얼마나 사업을 독점하기에 급급한 것은 넉넉히 알 수 가 있지 아니한가. 혹자는 말하기를 아무리 다수한 주식을 공모한다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빈약한 조선에서는 도저히 소요의 자금을 수합(蒐合)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은 고의가 아니라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변명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정반대니 전자 제련회사의 경험에 의하면 공모 2만주에 응모가 139000여주로 아무리 조선이 빈궁하다 할지라도 기(幾) 천만원의 회사를 창설하기에 족한 자금쯤은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회사의 목적하는 사업이 유리하기만 하다하면 누구나 여기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아니할 것이다. 더욱이 최소한도의 주(株)를 공모하여「프리미엄」을 붙이려 함은 건실한 실업가의 취할바 태도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4.
당국은 항언(恒言)하되 동경, 대판(大阪)의 자본이 조선에 이입되고 이에 의하여 조선의 산업이 개발됨은 조선과 조선인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고 한다. 어느 일부분으로 본다하면 그렇지 아니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저한도의 노임쯤을 받는 것으로써 조선인의 행복이라 하면 이것은 너무나 가련한 행복이다. 자본의 사업독점이 아무리 피하기 어려운 추세라 할지라도 조선은 특수한 지대인만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 폐풍을 타파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보다도 사업가보다도 당국자 자신이 특별한 영단(英斷)을 가지고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공업 조선을 건설한다 할지라도 빈궁한 조선인은 이에 참가할 기회가 없을 것이요 따라서 조선인의 행복 증진은 바라기 어렵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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