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5. 10.
지난 편에 이어 이번에는 센터의 기술 중 블로킹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많은 팬들도 블로킹에 대해 궁금하겠지만, 특히 많은 후배 선수에게 내가 어떻게 블로킹을 준비하고, 운동했는지 전수해달라는 문의가 많았다.
외국은 배구의 각 기술에 대해 세분화된 설명이 많고 이 자료들이 많이 공유된 반면, 아직 우리나라는 많은 이가 공유할 수 있는 자료나 설명이 없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블로킹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내가 선수 시절 어떻게 준비했는지 등 경험한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개인의 경험에 의한 글인 만큼 지극히 주관적 시점에서 설명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나는 블로킹을 벽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견고한 높은 블로킹일수록 상대에게 위압감과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갈수록 빨라지는 세트 플레이에서 상대 공격수가 공을 때리기 전에 내 블로킹이 얼마나 빨리 많이 오버가 되느냐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블로킹의 5가지 요소를 꼽자면 기본자세(세팅 자세), 위치 선정(리딩 능력), 움직임, 타이밍, 손 모양이다. 그리고 시합 전에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은 마쳐야 한다고 본다.
▲ 기본자세에 대한 설명을 적어놓은 내 노트, / 한국배구연맹 제공
기본자세
많은 선수가 기본적인 자리 선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구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0.1초라도 불필요한 동작을 해 시간을 뺏기면 블로킹을 쫓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손을 11자로 쭉 뻗은 채 준비를 하거나 손을 아예 내린 채 가만히 서있는 자세에서 준비했다.
우선 자리 선정에서 네트와 내 몸의 거리는 50~60cm 정도로 한다.
골반과 무릎은 10~15도 정도 낮춰 있어야 한다. 스탠딩 자세에 높이를 잃지 않고, 가장 빠르게 반응을 하기 위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체와 팔 위치는 중심이 네트 쪽으로 항상 가 있는 상태에서 준비되어야 하며, 팔 위치는 상대 속공 방어와 사이드 이동에 가장 용이한 얼굴 위치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
▲ 경기 전 상대팀 플레이마다 위치 선정을 적어 놓은 노트 사진 / 윤봉우 제공
위치 선정
배구는 6자리의 로테이션 자리가 있다. 위치 선정에는 기본적으로 분석을 통해 상대 속공수 출발 위치를 알아야 한다. 여기 더 깊게 분석을 한다면 자리마다 자주 쓰는 속공이 존재하며, 속공의 배분, 공격수의 습성, 그리고 사이드로 빠져나가는 토스가 어느 쪽이 더 빠른가를 알고 준비할 수 있다.
위치 선정은 리시브, 세터 습성, 점수, 각 팀의 작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우리 편 서브가 넘어가기 전에 상대 속공수 앞에 세팅이 되어야 한다. 맨투맨 블로킹과 리딩 블로킹으로 나눠지겠지만 리딩 블로킹일 때는 내가 상대 속공수 앞에 세팅 후 사이드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알아야 한다. 긴 쪽이 있으면 짧은 쪽이 있으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스텝의 폭 또한 계산을 하고 위치 선정을 해야 한다.
▲ 움직임에 나오는 스텝 이동과 팔 동작, 그리고 볼을 따라가는 시선을 설명한 사진
움직임
기본 자세와 위치 선정 이후 움직임은 신체 능력이 중요하다. 많은 체력운동을 하는 것도 결국 네트 앞에서의 스피드를 만들기 위해서다. 여기에 스텝의 중요성이 필수다. 많은 센터 선수가 느낄 것이다. 내가 볼과 움직임이 같아지는지, 상대 세터의 놀음에 놀아나는지를. 무릎과 발목에 타이밍을 빼기는 순간 역모션이 나오면서 그 세트플레이의 블로킹은 1명 내지 노 블로킹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상대 플레이는 상대 세터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역으로 센터가 결정하고 먼저 움직이는 때도 있다. 이런 플레이는 프로 선수들이 주로 하지만 위험성도 크다. 보는 이와 하는 이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벤치와 소통하며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센터가 전체적인 상대의 플레이를 다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 타이밍에 대한 마지막 도약과 동작 설명에 대한 사진
타이밍
타이밍이란 상대 공격수와 내 블로킹 점프의 타이밍을 말한다. 토스를 잘 따라가도 상대 공격수와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정확한 오버 블로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많은 선수, 특히 중고등학생 선수는 공격 점프 높이와 블로킹 점프 높이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는 블로킹 점프를 할 때 골반 점프와 상체를 같이 차는 동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의 움직임(이동동작)에 스피드를 더해 본인이 가진 힘을 다 써서 높이 점프를 뛰어야 하는데 네트와의 폭이나 상대 세터에게 타이밍을 뺏기기 때문에 단순히 자리만 잡는 블로킹만 하는 것이 많은 중, 고등학생 선수의 현실이다.
대략 공격 점프와 블로킹 점프의 차이는 10cm 내외다. 블로킹을 할 때는 팔 동작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상체의 힘을 같이 쓸 수 있고, 점프를 차는 동작에서 연결 동작으로 점프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11자 자세로 블로킹이 올라가야 불필요한 동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 배구 연맹 제공
손 모양
위의 4가지 단계를 모두 거쳤다면 마지막이 내 팔과 11자로 만들어지는 상태인 손 모양이다. 물론 상대 공격수의 코스나 주된 공격 코스에 따라 모양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1자 모양이 되어야 한다. 위 타이밍의 연결선에서 팔을 이용해서 점프를 차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내 중심 앞에서 11자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이 동작이 말처럼 쉽지 않다. 세터와의 타이밍 싸움 후, 볼을 보고 중심을 이동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과정에서 중심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11자가 되더라도 네트와 팔 사이의 공간이 생긴다면 이는 오버 블로킹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자 블로킹의 완성은 단순히 팔만 11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작이 내 중심 앞에서 이뤄져야 한다.
▲ 2016년도-자세와 중심에 대해 혼자만의 생각으로 정리한 노트 사진
위의 5가지 요소에 추가해야 하는 2가지
▲ 선수 시절 경기 준비 노트와 자료를 공부한 흔적들
분석-무엇을 봐야 하는가!
우선 기본적으로 상대 플레이는 다 외워야 한다. 지금의 프로팀은 분석관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다음은 세터의 습성을 알아야 한다. 로테이션마다 누가 많이 때리는지를 나타내는 자리별 배분도, 점수대별 분배와 공격수 코스, 상대 주공격수의 배분도 등 단순히 머릿속에서 예상했던 것을 정리하고 코트 위에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기할 때 아주 짧은 순간의 타이밍을 잡아갈 수 있는 감각과 시야가 생기기 때문이다.
▲ 겨울 시즌 내내 즐겨보던 데이터 발리 영상
몸 관리
많은 배구팬의 착각 중 하나는 센터 포지션이 전위 3자리만 돌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세이브가 되는 포지션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센터는 공격과 수비를 포함해 세트당 40~50번가량 온 힘을 다해 점프를 뛰어야 한다. 공격수나 세터처럼 경기 내내 코트를 뛰어다니는 건 아니지만 네트 전위에 자리 잡았을 때는 다른 포지션보다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도 단순히 무거운 무게, 많은 횟수를 소화해 몸을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파워와 스피드를 네트 앞에서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체력 운동이 필수다.
▲ 부상으로 시달렸을 때 자주 찾아보던 책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몸의 변화와 부상으로 최대치의 경기력을 내지 못하는 때가 온다. 이는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각 팀에 유능한 트레이너 선생님분들이 많지만 결국 선수의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꼭 알아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 20년간의 내 전 재산들
내가 직접 코트 안과 밖에서 해왔던 것들을 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지난 20년간 직접 정리해왔던 내 보물 같은 노트와 영상을 다시 찾아보고,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러고도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분들이 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정리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추억이 됐지만 치열했던 그때를 다시 회상할 수 있게 해준 감사한 분들, 그리고 글을 통해 내 생각을 풀어낼 수 있게 해준 분들을 위해 늦은 밤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늦은 밤까지 글이 써지지 않았던 흔적들
물론 지금 이 글을 본 누군가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다만 오랜 선수 생활을 하며 프로배구 선수로, 또 국가대표 선수로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의견을 공유해 이를 주제로 더 많은 이가 배구를 주제로 토론하는 장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다양한 이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배구, 더 창의적인 배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배구는 정말 재미있는 종목이다. 물론 기술에 대해, 규정에 대해 상세하게 아는 만큼 그 재미는 더욱 배가된다.
배구에 대해 잘 몰랐던 분들도 배구를 알게 되고, 직접 해보며 재미를 찾는 과정을 통해 ‘배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이었나!’라고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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