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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우] 센터의 삶

--윤봉우 배구

by econo0706 2022. 9. 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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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26

 

나는 처음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센터였다. 배구라는 종목, 특히 센터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높이를 빼고 논할 수 있는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배구 입문은 목포 청호중 2학년 때다. 당시의 내 키가 186cm였다. 키는 컸지만, 배구의 ‘배’자도 알지 못하는 채로 운동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지나 한양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당시 한양대학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성적과 실력으로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바짝 긴장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대회를 나가기 전에 항상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전설적인 모 선배가 학교를 찾아와 “3등은 등수가 아니라고! 경기를 하면 이기고 지는 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 문화일 수 있지만 당시는 오전과 오후, 야간은 기본이고 새벽 운동도 비일비재했다. 오직 승리만이 모든 것을 인정해준다는 분위기, 학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한양대학교는 선수 구성도 남달랐다. 항상 고교 탑3 학생들이 진학하고, 운동을 하면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었다. 2000년에 입학했을 당시 졸업반 빅3 선배인 이영택, 손석범, 백승헌, 그리고 2년 선배인 이경수 선배와 겨울리그를 함께 보냈다. 당시 네 명의 선배 모두 대학생 신분에도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던 터라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고, 운동과 경기를 같이 한다는 것이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선배들의 장점을 배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키만 컸을 뿐, 체중이 73kg에 불과했다. 점프도 잘 하지 못했고, 스텝 역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은 훈련할 때 마다 가볍게 내 블로킹 위에서 공격을 때렸다. 점프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체중을 불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같은 포지션인 영택이 형의 폼을 따라 하고 싶었다. 영택이 형은 지금도 그렇고 프로에서 같이 뛸 때도 블로킹 손모양 각도가 참 좋았다.

 

그렇게 대학생활 3년을 마치고, 지금으로 치면 얼리로 ‘센터왕국’ 현대에 입단했다. 내가 현대에 온 다음해에 이선규와 하경민까지 합류했다. 당시 현대는 무려 6명의 센터를 보유했다. 방신봉, 한희석, 신경수, 윤봉우, 이선규, 하경민까지 모두 2m대의 장신이며, 국가대표를 지낼 만큼 실력들이 출중했다. 덕분에 무한 경쟁이 시작됐고, 나는 비로소 성장이라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6인 6색의 센터라인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현대의 센터 6명은 각자의 장점이 분명했다.

 

방신봉 – 지금도 나에게 누가 블로킹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1초의 주저 없이 ‘황금방패 방신봉’이라고 답한다. 프로 출범 이후 배구팬이 되신 분들이라면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한국전력의 신봉이 형을 더 많이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신봉이 형의 전성기 시절에는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1999년에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베스트 블로커를 받았다. 프로와 아마 통틀어 1000개 블로킹도 가장 먼저 달성한 선수이며, 전체를 다 합쳐도 가장 많은 블로킹을 한 선수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블로킹을 할 때만큼은 손의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블로킹 손이 오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오버블로킹을 하는 선수가 신봉이 형이었다. 상식적으로 블로킹은 네트를 손이 얼마나 오버를 하느냐에 따라 상대 공격수의 각도를 줄이고, 점수로 연결이 되느냐가 결정된다. 하지만 신봉이 형은 네트에서 손이 오버가 되지 않는데 떨어지는 볼을 보면 완벽하게 오버블로킹이 되어 센터라인으로 빨려 들어가듯 잡아내는 블로킹을 잡아 낸다. 은퇴를 한 지금도 그 방법을 연구를 하지만 신봉이형만의 낙천성이 없으면 쉽게 따라하지 못할 것 같다.

한희석 – 희석이 형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점프가 좋았다. 선수생활 마지막에는 무릎 때문에 고생을 하셨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공격 타점이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센터가 될 수 있을지, 세터와 그리고 각 센터의 장점을 이야기 해주며 이런 면은 저 선배를 닮아가고, 또 이런 면은 다른 선배를 닮아가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희석이 형은 치열한 팀 내 주전 경쟁 속에서 조율과 소통을 담당하셨던 것 같다.

신경수 – 지금은 경기대 감독님인 경수형은 속공을 크로스로 때리는 각도가 단연 리그 최고였다. 그리고 흔히 속어로 ‘짤라 먹는 속공’이라고 하는 볼을 가장 잘 때린 선수였다. 손목 스냅이 가장 빠른 선수 중에 하나였으며, 크로스로 때리는 속공의 각도를 본인의 중심 이동과 스텝으로 만들어서 때리는 선수였다. 세터 입장에서는 올려만 놓으면 알아서 때려주는 스타일이니 타이밍 맞추기 쉬운 선수였을 것이다. 경수형은 별명도 ‘번개속공’이었다. 현대 시절 나와 1대1 훈련을 하는 날에는 나는 직선 공격, 경수형은 크로스 공격 서로 알면서 서로 막지 못하고 장난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선규 – 프로출범이후 은퇴 전까지 1000개의 블로킹을 가장 먼저 달성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가장 인기있는 미들블로커였다. 선규가 블로킹을 잡는 순간에는 유관순체육관에 큰 함성이 귀가 아플 정도로 터졌다. 공격과 블로킹의 밸런스가 가장 좋은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현대를 떠나 삼성화재, KB손해보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은퇴가 조금 빠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제는 선규의 플레이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종종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고, 이제는 남자대표팀 트레이너로 후배들에게 좋은 지도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경민 – 경민이의 가장 큰 장점은 속공블로킹이었다. 신장 204CM에 나오는 기본적인 높이에, 팔도 길어 순간의 타이밍으로 이뤄지는 속공을 가장 잘 막았던 선수였다. 그리고 파이팅이 좋은 선수였다. 경민이가 신기했던 건 국내에서도 활약이 좋았지만 국가대표 경기를 나가면 더 잘했던 선수였다는 점이다. 해외파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타이밍이 외국선수들과 할 때가 더 잘 맞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윤봉우. 나는 누구보다 비디오를 제일 많이 본 선수라고 자부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하자면 직선으로 끌어치는 공격과 용병을 상대로 한 블로킹을 조금 더 잘 했던 것 같다. 사실 부족함을 찾아 내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완하려 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비디오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수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습관성 움직임을 알아갔고, 분석을 하면서 세터들의 습성을 알고 싶었던 나는 개별 상황에서 세터의 생각이 궁금했고, (최)태웅이 형과 (권)영민이 형에게 참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사실 세터와 센터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실과 바늘이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듯 말이다.

 

 

형들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줬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형들이 참 고마운 존재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베테랑이란 말을 지나 노장의 단계까지 접어 들었다. 여러 팀을 옮겨가며 팀마다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때의 형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많은 후배들과 공유하려 노력했다.

 

운동선수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거기에 좋은 동료들까지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센터로서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과 베테랑 세터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행운이었고, 정말 많이 보고 배웠다.


이제는 V리그를 대표하는 센터인 (최)민호와 (신)영석이를 보며 때론 부럽기도 하고, 더 잘 할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둘 다 전성기의 나이는 지났지만, 본인들을 보고 배우려는 어린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더 많은 것들을 이뤄내길 바란다.

다음 편은 센터에게 기술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 풀어보려 한다. 내가 경험했던 노력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어린 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조금 더 기술적으로 풀어보겠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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