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6. 03.
2004년 A선수는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이적하며 이적료 11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K리그엔 이적료 및 연봉 인플레 현상이 두드러졌다. 2007년 올림픽대표 B선수는 이적료 27억원이었고, 비슷한 수준의 C·D·E선수도 같은 시기에 각각 24억원, 20억원, 17억원 등의 이적료를 받고 국내 구단 유니폼을 입었다. 당연히 연봉 및 수당도 급상승했다. 한 경기 이기면 1500~2000만원을 손에 넣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여럿 나왔다. 수준급 선수 연봉도 10억원 가까이 상승했고, 외국인 공격수에게도 많은 돈을 제시하는 구단이 생겨났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현재 모 구단 고위 인사는 “마침 일본 구단이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거품을 빼던 때였다. 그래서 일본으로 가려던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각 구단들이 많은 돈을 썼고 영입 경쟁도 치열했다. 외국인 선수들 수준도 훌륭했다. 지방구단이나 시민구단도 그런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 리그의 과거가 아니다. 불과 7~10여년 전 K리그의 모습이었다. 리그 자체에 돈이 많이 흐르다보니 많은 대표급 선수들이 K리그에서 뛰었고, 또 해외에서 뛰다 실패한 선수들도 두둑한 연봉을 주는 K리그 리턴을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2006 독일 월드컵 땐 국내파 위주로 겨울 전지훈련을 했는데, 거기서 활약하면 월드컵 본선에서도 주전을 확보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자연히 경기력은 계속 상승했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티켓이 4장으로 늘어난 2009년부터 K리그 경기력은 진가를 드러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5팀이 돌아가면서 결승에 올라 3팀이 우승하기도 했다.
▲ 수원과 서울 선수들이 4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두 팀 맞대결에서 볼 다툼을 하고 있다.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투자가 성적으로 연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K리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우린 돈을 쓴 만큼 좋은 축구를 하는 ‘성적’엔 능력을 발휘했지만, 돈을 쓴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경영’엔 취약했다. 좋은 선수 한 명을 사면, 그 선수가 전달하는 골과 어시스트에만 신경을 썼지, 과연 구단 수입에 얼마로 이어졌는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선수→성적→팬→수입→선수’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지 못했다. 구단주의 축구 사랑 아래 숱한 국가대표들을 영입, K리그 7회 우승 등을 비롯해 ACL, A3 챔피언십, 피스컵 등에서 위용을 뽐낸 일화 축구단이 구단주 사망과 함께 먼지처럼 사라질 뻔했던 일은, 경기력에만 집중하고 승패에 일희일비했던 과거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모기업이 무조건 돈을 던져주지 않는 시대가 왔다. 모기업이 휘청거리거나 모기업 관심이 사라지면서 불안해진 구단들 현주소도 패러다임 변화의 여파로 볼 수 있다.
ACL 16강 결과 때문에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물론 기자는 K리그만 4팀 모두 16강에 진출했고, 일본만 2팀이 8강에 간 가운데 한국 등 나머지 국가 클럽들이 하나씩 8강에 오른 게 그렇게 실패였는가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든 “투자를 안 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기력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투자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게 정답인가에 대해선 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다. 그보다는 지금은 돈을 어떻게 쓰고 벌어 각 구단 경영이 선순환 구조로 바뀔 것인가를 논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정답은 아직 없다. 돈을 선수에 쓰면서 좋은 경기력과 내용으로 효과를 노리는 게 맞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고 마케팅이나 지역 밀착에 쓰면서 연고지 팬들이 성적에 관계 없이 구장을 찾도록 하는 게 답일 수도 있다. 유소년 키우기를 통한 수익 창출도 투자로 볼 수 있다. 축구계가 힘을 합쳐 구장 장기 임대 등을 모색할 수도 있다. 우승은 한 순간이다. ‘밑 빠진 독 물 붓기’와 같은 ‘묻지마 인건비 투자’보다는 선순환 진입을 위한 ‘합리적 체질 개선’이 필요할 때다. 구단 1년 입장료 수입으로 최고 연봉 선수 몸값도 주지 못하는 구단이 여전히 많다.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자료출처 : 스포츠서울
[축구수첩] 14년 전과 거꾸로…히딩크와 판 할이 주는 교훈 (0) | 2022.09.17 |
---|---|
[축구수첩] 상승세 여자축구, '진짜 기적' 리우행에 도전해보자 (0) | 2022.09.16 |
[축구수첩] 브라질 월드컵 '어느 덧 1년'…무엇이 달라졌나 (0) | 2022.09.16 |
[축구수첩] '여자도 축구한다'…감동의 스토리 이제부터 (0) | 2022.09.16 |
[축구수첩] 대구FC 변신이 눈길을 끄는 이유 (0) | 2022.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