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6. 24.
잘 싸웠다. 갖고 있는 실력을 다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태극 낭자들의 도전은 아름답게 끝났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토너먼트에 올라 16강전까지 벌이고 돌아온 여자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낸다. 온 국민의 아침을 기쁘게 만든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전의 감동은 당분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태극낭자의 토너먼트 진출을 ‘기적’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대회 참가 24개국 중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랭킹 15번째(전체 18위·북한 덴마크 이탈리아 불참)를 차지하고 있다. 실력 자체는 충분히 16강 진입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베팅업체나 해외 언론도 1~2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한국의 16강행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다만 우리가 월드컵 출전이 한 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경험이 적다보니, 그런 경험이 한국 여자축구를 토너먼트행 경계선에 놓게 한 것이 정확한 현실이었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그런 핸디캡을 향상된 실력과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으로 이겨냈고, 조 3위 와일드카드가 아닌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당당하게 통과했다.
▲ 여자축구대표팀이 캐나다 오타와 랜즈다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E조 스페인전을 이긴 뒤 환호하고 있다. / 제공=대한축구협회
한국 여자축구는 ‘황금시대’를 맞고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이 기세와 멤버를 살려 또 하나의 쾌거, 진정한 ‘기적’에 도전해야 할 때가 왔다. 그 것은 바로 여자축구 최초의 올림픽 진출, 그리고 한국 축구 역사 최초의 올림픽 남·여 동반 진출이다. 올림픽 남자축구가 23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되는, 연령별 대회로 열리는 것과 달리 여자축구는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A대표팀 선수들이 출전한다. 그러나 티켓은 16개국이 참가하는 남자축구보다 좁아 12장에 불과하다. 24개국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보다 산술적으론 두 배 더 힘든 무대라서 그런지, 권위나 메달의 가치는 월드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심지어 월드컵 본선이 올림픽 예선을 겸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2016 리우 올림픽 예선을 별도로 치르지 않고, 이번 캐나다 여자월드컵 유럽 상위 3개국에게 본선 티켓을 준다.
올림픽은 그동안 한국 여자축구에 ‘넘 볼 수 없는’ 무대였다.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이 두 장에 불과하다보니, 출전 자체를 꿈꾸기도 힘든 커다란 벽이었다. ‘아시아 양강’인 일본과 북한, 전통의 강호 중국이 있고, 2007년 호주가 아시아로 편입하면서 한국 입장에선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2012 런던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도 5위에 그쳤다. 이번엔 다르다. 윤덕여 감독 체제로 2년 6개월간 꾸린 대표팀의 잠재력이 살아 있고, 여자월드컵 16강 진출을 통한 자신감도 얻었다. 지난 해 아시아선수권 득점왕 박은선이 부상에서 돌아오고, 지소연 여민지 등 두 공격수도 제 기량을 끌어낸다면, 수비 조직력을 더 다져나가고, 동아시안컵 등에서 A매치 경력을 더 쌓는다면 이번엔 ‘기적의 문’을 한 번 두드릴 수 있을 것 같다. 2년전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을 보기 좋게 눌렀던 기억, 지난 해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북한과 명승부 끝에 아쉽게 진 기억도 이제는 한국 여자축구가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연결된다.
리우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은 내년 2월 말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자축구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자월드컵 16강에 취하지 말고, 올림픽 본선 진출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힘과 지혜를 한 번 더 모아보자. 2016년을 여자축구 최고의 해로 만들어보자.
김현기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
자료출처 :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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