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1
세상일은 무척 변천이 심하다. 오죽하면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고[桑田碧海·상전벽해], 동해에서 티끌이 날린다[東海揚塵]라고 비유했겠는가. 어제의 평범함이 오늘의 비범함으로, 다시 내일의 심상함으로 거듭 변할 수 있다. 세월에 속아 살다 보면 세월을 만날 수 있는 게 세상사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힘들다[塞翁之馬·새옹지마].”라는 말도 이와 맥이 닿는다고 할 수 있다. 갈마드는 인생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늘 온 힘을 다하라는 뜻이 담겼다.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때 신도 감응해 손을 내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지 않았나.
첫 잔을 띄운 뒤 38년이 흐른 한국 프로축구에서, 오늘날 최고 명가로 이름을 드높이는 구단은 전북 현대다. 1983년 출범 이래 39번의 시즌을 치른 K리그에서, 전북은 최다 우승(9회)의 영광을 일궜다. 어제엔 없었고 내일에도 좀처럼 이루기 힘들 듯한 5연패(2017~2021)의 금자탑도 쌓았다.
그러나 전북도 늘 꽃길을 걷지만은 않았다. 오늘날 숱한 승전고를 울리며 정상에 우뚝 서 포효하는 전북이지만, 어제엔 가시밭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슬픔에 잠겼던 기억도 병존한다. 전북의 발자취에선, 더께가 쌓인 희비쌍곡선이 엿보인다.
열악한 지역 연고 토양에서 두 번째 씨앗으로 뿌려진 전북 현대
전북 현대는 전주를 비롯한 전라북도를 프랜차이즈로 한다. 이 연고 지역에, 프로축구 기운이 싹튼 시기는 K리그 초창기인 1991년이었다. 이해 11월, 시민 구단을 표방한 전라스포츠클럽이 ‘완산 진도개(표준 표기는 진돗개)’ 창단을 선언하면서였다. 이듬해 ‘완산 푸마’로 이름을 바꾸어 그해 7월 대한축구협회(KFA) 승인을 받음으로써 K리그에 얼굴을 내밀 수 있는 듯했다.
그러나 햇살은 그렇게 쉽게 찾아들지 않았다. 한국에선, 아직 시민 구단의 개념이 낯설어 연고지 축구팬들에게서도 외면당한 데서 비롯된 어두운 시절이었다. 이런 환경은 열악한 재정으로 이어졌고, 운영비 부족으로 말미암은 중도 포기를 염려한 KFA는 K리그 참가 자체를 봉쇄했다. 그 뒤 제우 엑스터→ 전북 엑스터를 거쳐 전북 버팔로로 1994시즌 K리그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여전히 암울하고 불안한 나날이었다.
이마저도 한 시즌밖에 버티지 못했다. “1승이라도 올릴까?”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3승을 기록하긴 했다. 그렇지만 물경 22패로 처참하게 내몰리며 그야말로 ‘승점 자판기’의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물론 꼴찌였던 전북 버팔로는 끝내 1994시즌 종료와 함께 해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이 지역 프로축구사의 첫 장은 초라하다 못해 피폐할 정도다. 이 배경 아래서, 두 번째 씨앗으로 뿌려진 구단이 ‘전북 다이노스’, 곧 오늘날 전북 현대다. 1994년 12월 12일, 전북은 전주 코아호텔에서 창단식을 열고 첫출발의 고동을 울렸다. 할렐루야가 프로 시대를 연 이래 열 번째 팀이니만큼 첫 두 자리 숫자의 구단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프로 마당에서도 신기원을 이어 가자고 다짐하며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가파른 우승 주기 곡선의 전북 현대 기세, 세계적 명가에 버금가
전북 현대도 닻을 올린 뒤 몇 해 동안은 어두운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시대적 배경에 따른 ‘태생적 한계’가 한 원인이었다. 2002 월드컵 유치의 한 방안으로, K리그 활성화를 홍보해야 했던 정몽준 체제의 KFA의 요청에 따라 장기적 청사진 없이 서둘러 창단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자동차의 방계 회사라 할 수 있는 현양이 기본 자본금으로 10억 원을 출자해 첫발을 뗀 데서도 엿볼 수 있는 ‘졸속성 창단’이었다. 현재 운영 주체인 현대자동차가 당시 20억 원을 홍보 스폰서 형식으로 지원하고 한 걸음 물러서 지켜봤던 점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9년 5월, 전북은 현대자동차 직영 체제로 전환되며 비로소 움트고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이듬해 팀 이름도 ‘전북 현대모터스’로 개명했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두 번 바뀌면서, 전북은 이제 으뜸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북은 한 해 한 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스스로 써 내려가고 있다. 첫 장은 2020시즌에 장식했다. K리그 38년(햇수 기준)사에 처음 아로새긴 4연패였다. 성남 FC가 일화 시절 이뤘던 두 차례 3연패(1993~1995년, 2001~2004년)를 넘어서며 연 새로운 지평이었다. 2021시즌엔, 자신의 힘으로 그 기록마저도 깨뜨리며 사자후를 토했다. K리그 마당에 높이 세운 5연패(2017~2021년)의 화려한 금자탑이다.
참으로, 놀라울 만큼 힘차게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이다. K리그에서 뛰어논 27시즌(1995~2021년) 동안, 아홉 번씩이나 정상을 밟았다. 평균 3시즌마다 K리그 천하를 평정한 가공할 기세다. 처음 패권을 안았던 2009시즌을 기산으로 하면 1.44시즌마다 K리그를 호령하는 맹위를 떨쳤다.
세차게 뻗어 나간 전북의 서슬은 축구의 본향인 유럽 프로축구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1888년 풋볼리그 1부로 출범해 1992년 프리미어리그로 탈바꿈한 잉글랜드 최상위 프로축구 무대에서, 최고 연기를 펼친 클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1907-1908시즌에 처음 정상에 오른 이래 최다 우승(20회)의 영예를 지키고 있다. 뉴턴 히스 LYR에서 지금 이름으로 재창단한 1902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 주기는 5.95시즌이다. 전북이 거의 배에 이를 만큼 달콤한 우승 맛을 더 자주 누림을 읽을 수 있다.
전북의 타오르는 모양새는 1929년 처음 출항해 89회 시즌(스페인 내전 기간 중단)을 치른 스페인 라리가와 대비해도 버금가는 형세다. 라리가에서 가장 많이 패권을 안은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다. 1902년 창단해 라리가 원년부터 줄곧 몸담아 오며 34회 정상을 밟아 ‘영원한 맞수’ 바르셀로나(26회)를 상당한 차로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우승 주기는 2.62시즌으로 전북에 앞섰다. 하지만 최근 기세를 보면 오히려 전북이 더 맹렬하다. 2010년대부터 전북은 8회 우승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3회에 그쳤다. 전북이 압도적으로 가파른 우승 곡선을 그렸다.
적은 나이테를 딛고 깊게 뿌리내리며 활짝 핀 전북은 내년 시즌 또 하나의 신기원에 도전한다. K리그 첫 두 자릿수 우승이다. 요즘 전북이 뽐내는 왕성한 기운이라면 2022시즌에 큰 뜻을 이룰 가능성이 무척 크다. K리그를 넘어 세계 무대를 향해 뛰어가는 전북이 앞으로 어떤 몸놀림으로 선명한 발자취를 그려 나갈지 궁금하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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