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3.
겨울이 되면, 동물은 활동을 중단하고 땅속 따위에서 겨울을 보낸다. 개구리나 뱀과 같은 변온동물이 대표적이다. 곰과 다람쥐와 같이 겨울잠에 들어가는 항온동물도 있다.
그런데 곰은 겨우내 자지는 않는다. 느릿느릿할망정 간간이 일어나 움직인다. 오래 자는 동안 쌓인 독소를 풀려고 약초를 뜯으려는 움직임이다.
겨울잠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쓰인다. 발전이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질 때 곧잘 비유적으로 이르곤 한다.
‘황희찬 돌풍’, 2021-2022시즌 초반 PL에 휘몰아쳐
황희찬(25‧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겨울잠이 길어지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입성 초기의 용솟음치던 기세는 어느덧 자취를 찾기가 힘들다. 2021-2022시즌 초반부에, 혜성같이 나타나 울버햄프턴의 앞길을 환히 비추는 빛을 내뿜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밝음을 잃어 가며 드리워진 어둠의 그늘에 뒤덮인 모양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겨울잠이다. 지난 10월 23일(이하 현지시간
) 9라운드 어웨이 리즈 유나이티드전을 끝으로 기나긴 골 침묵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엎친 데 덮쳤다. 부상의 악령까지 찾아왔다. 뚜렷한 병명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언제 일어나 기지개를 켤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황희찬은 PL 2021-2022시즌을 힘차게 맞이했다. 독일 분데스리가(RB 라이프치히)에서 PL로 둥지를 옮기며(임대 이적) 희망에 가득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새 술을 새 부대에 가득 채우리라 꿈을 부풀리며 밟은 PL 마당이었다.
꿈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데뷔 무대에서, 황희찬은 화려한 연기를 펼쳤다. 4라운드 왓퍼드전에서, PL 마수걸이 골을 터뜨렸다. 후반 18분에 교체로 투입돼 20분 만에 맛본 환희의 첫 골이었다.
이내 ‘황희찬 돌풍’이 거세게 일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개바람이었다. 그 형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물꼬가 트이면서, 물은 세차게 밀려 들어갔다.
이번 시즌 PL 득점 레이스에서, 황희찬은 4골로 26위(22일 현재)를 달리고 있다. 초반 출장한 6경기(4~9라운드)에서, 그 4골을 모두 수확한 데 힘입은 결과다. 초반에 일으킨 선풍이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징이다.
정점은 10월 2일 홈(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7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이었다. 90분간 풀 가동한 황희찬은 2골을 몰아 터뜨렸다. 일찌감치 전반 20분 만에 선제골을 넣은 데 이어 1-1로 맞서던 후반 13분 결승골까지 한판을 눈부시게 장식했다. MOM(경기 최우수 선수)은 당연히 양팀 최고 평점(8.62)을 받은 그의 몫이었다.
부진과 병마 떨쳐야 팀도 살아나
뜻밖이었다. 돌연 거세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급반전이었다.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었다. 침체의 늪이 들이닥쳤다.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듯 허덕이는 황희찬이었다. 11월 1일 10라운드 홈 에버튼전부터 12월 15일 17라운드 어웨이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전까지 8경기에서, 전혀 골과 연(緣)을 맺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골을 노리려면 슛을 날려야 한다. 그런데 아예 슛조차 시도하지 못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8경기(10~17라운드) 가운데 7경기에서, 아예 단 한 개의 슛조차 때리지 못했다. 12월 1일 14라운드 홈 번리전에서 두 차례 슛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한 번의 슛은 블록에 막혔다. 곧, 이 8경기에서 황희찬이 기록한 슈팅 수는 ‘2’다. 경기당 평균 한 개에도 크게 못 미치는 0.25개에 지나지 않는다.
4~9라운드 6경기에서, ‘골 바람’을 일으키던 형세와 비교하면 극명한 차다. 이 시기엔, 매 경기 한 개 이상씩 슛을 날리던 황희찬이었다. 9개를 때려 경기당 평균 1.5개의 슛을 기록했다.
부진과 맞물려 팀 내 위상도 낮아졌다. 황희찬은 9월 22일 카라바오컵 토트넘 홋스퍼전에서 처음 선발로 출장한 이래 줄곧 스타팅 멤버로서 활약해 왔다. 그러나 10라운드부터 답보가 계속되며 급기야 16라운드 어웨이 맨체스터 시티전(12월 11일)에선, 벤치에서 출발한 뒤 교체로 투입됐다. 나흘 뒤 17라운드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전에서 다시 선발로 출장했으나, 경기 시작 16분 만에 부상으로 쓰러지며 물러 나왔다. 결국, 12월 19일 18라운드 홈 첼시전에선, 결장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평점(후스코어드닷컴 기준) 면에서도 궤를 같이하는 하강세다. 평균 평점에서, 4~9라운드(6.74점)보다 0.28점 뒤떨어진 10~17라운드(6.46점) 페이스였다. 이번 시즌 전체(6.66점)보다 낮은 평균 평점은 당연한 감내해야 할 결과였다.
울버햄프턴의 운명은 황희찬과 함께했다. 그의 활약상에 따라 웃고 울었다. 4~9라운드 4승 1무 1패로 웃었던 울버햄프턴은 10~18라운드 3승 2무 3패로 울었다. 그가 처음 모습을 나타내기 전인 1~3라운드에서, 무득점 3패로 ‘동네북’ 신세였던 울버햄프턴이다.
황희찬은 울버햄프턴의 공격 선봉이다. 팀 내 득점과 공격 공헌도(4골 1어시스트) 양 부문에서 1위를 달리는 모양새에서도 입증되는 위상이다. 이번 시즌 19경기 13골의 빈약한 득점력을 보이는 울버햄프턴에서, 그의 비중(30.8%)은 아주 높다. 그가 맹위를 떨친 6경기에서, 울버햄프턴이 9골을 터뜨린 데서도 드러나는 절대적 비중이다.
황희찬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울러 부상도 털고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팀도 살아난다. 그가 다시 돌아와 예전의 힘찬 날갯짓으로 거센 골 바람을 일으키기를 염원하는 울버햄프턴 팬들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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