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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최희섭과 지역주의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2. 9. 2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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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5. 22

 

두산 김승회가 연습투구를 마쳤다. 지난 19일 잠실구장 2회초. KIA 선두타자는 최희섭이었다. 대기 타석에서 방망이를 두 번 휘둘렀다. 3루쪽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연호하는 응원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천천히 타석을 향해 걸어갔다. 오훈규 주심을 돌아 타석에 들어서면서 간단하게 인사. 장갑을 고쳐끼고는 방망이로 양 발을 툭툭 쳤다. 타석을 꽉 채울 듯 당당하게 선 채 투구를 기다리며 방망이 끝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최희섭이 맞이한 한국프로야구 첫 투구는 바깥쪽 직구.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백네트를 넘는 파울이었다.

 

공이 본부석 바로 옆 3루쪽 내야석으로 날아왔다. 내야석 바닥에 두 번 튕긴 뒤 한 청년이 잡았고 가까이 있는 어린이에게 선물했다. 최희섭의 국내 프로야구 첫 타구를 갖게 된 김준범군(11·신천초 5)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감을 묻자 “야구장에 매일 오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삼성 양준혁의 팬이었는데, 이제 KIA 최희섭의 팬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군은 경기 내내 최희섭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희섭이 어떠냐잉.” 고향이 전남 영암인 그 친구는 당연한 듯 ‘우리 희섭이’를 찾았다. 이후에도 호남에 고향을 둔 선배, 후배로부터 ‘우리 희섭이’의 상태와 미래, 가능성을 묻는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최희섭의 복귀는 지금 대통령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지역주의의 부활을 가져올 것 같다. 물론 야구의 지역주의다. 이날 3루쪽 응원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따 정말로 크긴 크네잉”하는 구수한 사투리였다. 만약 최희섭이 서울팀 LG 두산이나 인천의 SK, 또는 대구 삼성, 부산 롯데로 돌아왔다면?

 

지난 20일 최희섭 경기 중계를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프로야구에서 영·호남팀의 대결은 한때 시청률의 보증수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KIA가 1997년을 마지막으로 9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광주의 야구 열기는 나날이 식어갔다. 서재응·김병현·최희섭 등 광주 출신 스타들이 모두 메이저리그로 떠난 것도 이유다. 97년 대선 이후 ‘정치적인 한’이 풀리면서 야구 열기가 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최희섭의 복귀로 호남팬들의 야구 사랑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미 한껏 달아오른 부산팬과 함께 프로야구를 이끌어 갈 두 축이 된다면 프로야구의 르네상스.

 

이제 한국 프로야구에서 정치적 색깔은 많이 옅어졌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팬들간의 으르렁거림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다. 야구의 지역주의는 팬들을 불러 모으고 덕분에 많은 관중앞에서 선수들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뛰게 만드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되려 반길만한 일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도 대세는 따른다고 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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