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6. 12
‘훈수’와 ‘조언’의 차이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타고 넘나든다. 마치 ‘불륜’과 ‘로맨스’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처럼 훈수와 조언도 평가가 극을 달린다.
최근 정치판에서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훈수 정치’냐 아니냐를 말들이 많았다. 야구도 ‘훈수’냐 ‘조언’이냐를 두고 말이 많은 종목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특히 심하다. 여기도 전직 감독들이 문제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 하라 감독의 아버지 하라 미쓰구는 무명 미이케 고교를 일약 전국대회 정상에 올려놓은 유명한 야구 감독이었다.
로버트 화이팅이 1977년에 쓴 ‘국화와 배트’에 따르면 하라 감독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테스트’를 받았다. 아버지 하라는 반사신경을 테스트하기 위해 3개월된 아들을 이불 위에 던졌는데 그 아들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을 오므리자 “음,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군”이라고 했단다. 그렇게 자란 하라는 요미우리 입단 뒤에도 ‘나가시마 시게오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나친 관심이 문제였을까. 하라가 한 경기라도 안타를 때리지 못하는 날에는 요미우리 전임 감독들과 코치들이 몰려들어 하라의 타격폼을 뜯어고쳤다. 그리고 하라는 그들이 지시하는 모든 것을 따라하려 애를 썼다. 막상 당시 감독이었던 오 사다하루는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하라와 함께 뛰었던 메이저리그 출신의 레지 스미스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주문을 하는데도 하라가 아직도 스윙을 할 수 있다는 게 신통하다”고 혀를 찼다.
사실 한국에도 있었다. 2002년말 삼성 김응용 감독은 덩치 큰 왼손타자 한명을 찍었다. “대형타자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때부터 그의 고난이 시작됐다. 삼성의 모든 코치들이 그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조언’이 너무 많았다. 스프링캠프부터 그의 타격폼은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어야 했고 결국 1군 통산 3년 동안 7타석 무안타, 타율 0에 그쳤다.
2006년 경찰청에 입단한 그는 이제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홈런 13개로 2군 북부리그 홈런 1위다. 33개로 타점 공동 1위. 타격 3할7푼으로 4위에 올라 있다.
내기바둑에서 ‘훈수’는 판을 깨기 십상이다. 섣부른 훈수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병규가 일본 주니치에 입단하자 일본야구 선배 이승엽은 “성공하려면, 남의 말을 너무 많이 듣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KIA가 꼴찌로 떨어지자 그라운드 안팎에서 훈수가 이어진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아직 리그는 3분의 2가량 남아 있다. 부상 선수가 많지만 마운드를 무리시키지 않고 끌어왔기 때문에 KIA에 반전 기회는 있다. 지나친 훈수는 선수나 감독을 모두 괴롭게 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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