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7. 10.
야구라는 종목의 가장 큰 특징은 매일매일 새로운 경기가 열리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쏟아낸다는 점이다. 투수를 제외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체력부담이 그만큼 적은 경기이기도 하다. 경기 중 간식도 먹고, 담배도 핀다. 야구는 게임 요소가 많다.
야구 감독이 영어로 헤드 코치가 아니라 매니저인 이유도 이 같은 야구의 특징 때문이다.
야구는 역사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오늘 벌어지는 한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려면 어제 경기를 알아야 하고, 지난해 경기를 알아야 하고 다음 경기, 내년 경기까지 예측해야 한다. 야구라는 종목이 어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 평균 IQ가 110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만큼 야구는 복잡하고 어렵다.
역사를 먹고 자라는 야구지만 아직까지 한국 프로야구에는 명예의 전당도, 야구 박물관도 없다. 그저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술자리에서 그때 그 투구, 그때 그 안타를 추억하는, 그때 불렀던 그 함성과 노래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또 하나의 역사는 올해가 끝나면 사라진다.
프로야구가 맨 처음 열렸던 곳. 대통령이 시구를 했고 이만수가 첫 안타와 홈런을 때렸던, 지금도 생생한, MBC 청룡의 이종도가 연장 10회말 때린 만루홈런에 자지러진 팬들의 기억. 동대문구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1982년에는 서울구장으로 불린 곳이다.
분명 프로야구의 시작도 동대문구장이었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82년, 정규시즌 경기만 47경기가 치러졌고, 당시 3차전으로 치러진 올스타전의 1경기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리고 김유동이 만루홈런을 때리고 박철순이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했던 첫번째 한국시리즈, 3차전부터 6차전까지 4경기가 열린 곳도 동대문구장이었다.
올시즌 동대문구장의 공식적인 마지막 경기는 오는 10월28일, 대통령배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으로 잡혀있다.
서울시의 예정대로라면 이 결승전이 동대문구장에서 치러지는 마지막 경기가 된다. 한국야구가 태어나서 자란, 승리의 환호와 땀과 눈물이 뒤범벅된 그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야구가 역사를 먹고 자란다면 동대문구장, 이대로 떠나보내기 아쉽다. 일본 고시엔 고교야구대회에서 선수들이 흙을 담아 퍼가듯 동대문 구장의 흙, 야구가 있는 모든 곳에 심는 것은 어떨까. 흙뿐만 아니라 동대문구장의 의자들, 안타가 터질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였던, 그 의자들을 프로야구가 열리는 전국 야구장에 심는 것은 어떨까.
시인 최영미가 말했다.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시가 미쳐 사랑이 될 때까지’ 생각한다고. 그 의자들, 야구장에 심어지면, 자리는 역사가 되고 역사는 야구가 되고, 그 야구가 미쳐 다시 역사가 되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야구말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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