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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축탁축(淸蹴濁蹴)] 저돌적 몸놀림의 황희찬에 필요한 것, 과감한 슈팅 지향

--최규섭 축구

by econo0706 2022. 10. 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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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02.

 

멧돼지는 통통하다. 비대한 몸은 얼핏 둔할 듯싶은 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연상을 비웃는 양 멧돼지는 매우 날렵하다. 100m를 10초에 뛴다고 할 만큼 날쌔다. 물론 힘도 세다.

‘저돌적(豬突的)’은 멧돼지의 이런 특성을 잘 나타낸 단어가 아닐까 싶다. 맷돼지[豬]처럼 세찬 기세로 거침없이 곧장 나아감[突]을 함축한 낱말이다.

 

겨울이 되면, 동물은 활동을 중단하고 땅속 따위에서 겨울을 보낸다. 개구리나 뱀과 같은 변온동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포유동물인 멧돼지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추위에 강하기 때문이다. 겨울잠에 들어가는 항온동물인 곰과 달리 멧돼지는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누비는 황희찬(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몸놀림은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먹이를 찾아 움직이다가 포착하면 재빠르게 짓쳐들어가는 멧돼지같이 골을 엿보다가 낚아채는 능력을 보노라면 ‘멧돼지 = 골’의 관념연합이 일어난다. 멧돼지처럼 무서움을 모르고 적진(골문)을 파고들어 먹이(골)를 노리는[豬突豨勇·저돌희용] 모습에서 떠올려지는 당연한 현상이다.

124일 만에 기지개 켜고 다시 저돌적 몸놀림 뽐내

겨울잠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쓰이곤 한다. 발전이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질 때 곧잘 비유적으로 이르곤 한다.

참으로 기나긴 겨울잠이었다. EPL 입성 초기의 용솟음치던 기세가 어느덧 자취를 감춘 길기만 했던 4개월이었다. 2021-2022시즌 초반부에, 혜성같이 나타나 울버햄프턴의 앞길을 환히 비추는 빛을 내뿜던 황희찬의 저돌적 몸놀림은 그동안 보기가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의 악령에 휘말리며 밝음을 잃고 드리워진 어둠의 그늘에 뒤덮인 야속한 시간이 흘러갔다.

황희찬이 124일 만에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지난해 10월 23일(이하 현지 날짜) EPL 9라운드 어웨이 리즈 유나이티드전(1-1 무)을 끝으로 깨어날 줄 몰랐던 골 침묵의 나날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다시 일어나 먹이를 포획했다. 지난달 24일 EPL 어웨이 아스널전(1:2 패)에서 비로서 그다운 몸놀림을 앞세워 선제골을 터뜨렸다. 뛰어난 후각을 바탕으로 먹이를 찾는 멧돼지답게 기회를 엿보다가 사냥한 골이었다. 상대의 패스를 가로챌 때 보인 섬광 같은 돌진은 성난 멧돼지를 방불케 했다.

부상에서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를 밟은 지 11일 만에 맛본 골이었다. 지난해 12월 15일 EPL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전(1-0 승)을 끝으로 부상 때문에 그라운드를 떠났다가 올 2월 13일 토트넘 홋스퍼전(2-0 승)에 모습을 나타낸 그였다. 그리고 세 경기 만에 골 사냥 감각을 되찾았음을 널리 알렸다.

골맛을 더욱 자주 보려면 슈팅을 날려라

황희찬은 2021-2022시즌 EPL 무대에 등장했다. 데뷔 무대에서부터 인상적 몸놀림을 선보여 EPL 마당을 휘저을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 11일 왓퍼드전(2-0 승)에 첫 모습을 선보이며 질풍 같은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경기에서, 후반 18분에 교체로 투입돼 20분 만에 EPL 마수걸이 골을 터뜨렸다. 첫 경기에서 맛본 환희의 첫 골이었다.

이내 ‘황희찬 돌풍’이 거세게 일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개바람이었다. 그 형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물꼬가 트이면서, 물은 세차게 밀려 들어갔다. 초반 출장한 6경기(4~9라운드)에서, 모두 4골을 잡아냈다. 초반에 일으킨 선풍이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징이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가 보다. 돌연 거세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급반전이었다. 멧돼지는 사냥 감각을 잃고 헤맸다. 그리고 급기야 깊은 잠에 떨어졌다. 11월 1일 에버튼전(2-1 승)부터 올 2월 20일 레스터 시티전(2-1 승)까지 출장 10경기에서 전혀 골과 연(緣)을 맺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골을 노리려면 슈팅을 날려야 한다. 그런데 아예 슈팅조차 시도하지 못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골 사냥에 실패한 10경기 가운데 9경기에서, 단 한 개의 슈팅조차 때리지 못했다. 12월 1일 14라운드 홈 번리전에서 두 차례 슈팅을 기록했을 뿐이다. 곧, 이 10경기에서 황희찬이 기록한 슈팅 수는 ‘2’다. 경기당 평균 한 개에도 크게 못 미치는 0.2개에 지나지 않는다.

4~9라운드 6경기에서, ‘골바람’을 일으키던 형세와 비교하면 극명한 차다. 이 시기엔, 매 경기 한 개 이상씩 슈팅을 날리던 황희찬이었다. 9개를 때려 경기당 평균 1.5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골은 슈팅을 전제로 한다”. 지극히 평범한 듯하나 참인 명제다. 연기됐다가 20라운드 아스널전에서, 황희찬이 골맛을 본 데서도 다시 한번 입증된 금언이다. 이 경기에서, 황희찬은 두 개의 슈팅을 날려 한 차례 골문을 열었다. 저돌적 몸놀림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슈팅을 날려야 진가가 한결 두드러지게 표출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희찬은 울버햄프턴의 공격 선봉이다. 객관적 지표인 팀 내 득점과 공격 공헌도 양 부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위상이다. 득점(5골)은 라울 히메네스와 함께 나란히 1위를 달리고 있다. 공격 공헌도(5개)는 히메네스(8개)에 이어 2위다.

그런데 골을 잡아내는 결정력 면에선, 황희찬이 히메네스를 단연 능가한다. 이번 시즌에, 황희찬은 18경기(교체 5)에 나서 1,183분을 소화했다. 3.6경기당 236.6분 만에 한 골씩을 터트렸다. 이에 비해 히메네스는 24경기(교체 2)에 출장해 1,924분을 뛰었다. 4.8경기당 384.8분 만에 한 골씩을 넣었다. 이처럼 확연히 대비될 만큼 황희찬이 골 사냥 능력에서 앞선다.

그런데도 히메네스는 황희찬과 팀 내 득점 선두를 달린다.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히메네스는 찬스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슈팅을 때렸다. 이번 시즌에, 히메네스는 경기당 1.9개의 슈팅을 날렸다. 반면 황희찬의 경기당 슈팅 수는 0.7개로, 히메네스의 ⅓가량이다. 황희찬이 저돌적으로 골문을 파고들면서도 슈팅을 날리는 데선 절제(?)했음이 엿보인다. 골 결정력에서 앞선다고 하지만, 왠지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황희찬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울러 부상도 털고 일어났다. 팬들은 그가 예전의 힘찬 날갯짓으로 거센 골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한다. 이런 팬들의 바람에 부응하려면 더욱 과감히 슈팅을 날려야 한다. 그래야만 멧돼지 같은 돌파와 한결 어우러질 골 사냥 솜씨가 빛을 발할 수 있다. 골잡이로서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축구 격언, “슈팅이 있어야 골도 존재한다”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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