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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史說] 박주영의 '영욕'

--손장환 체육

by econo0706 2022. 11. 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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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2 

 

박주영(37)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고, 한국 축구의 대들보가 되리라는 믿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잊혔던 박주영이 최근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축구 FC서울과 결별하고, 울산 현대로 옮긴다는 소식이다.

박주영을 처음 본 게 2004년이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19세 이하(U-19) 아시안컵에 출전한 박주영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의 스트라이커'였다. 차범근-최순호-황선홍-최용수-이동국을 잇는 정통 스트라이커 계보와는 확실히 달랐다. 피지컬이 우월하지도, 스피드가 뛰어나지도, 강슛을 날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골문 앞에서 어슬렁대다가 골만 주워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등 뒤로 날아오는 공도 180도 돌려서 슛으로 연결하는 유연함, 놀라운 점프력, 그리고 무엇보다 골문 앞에서 절대 당황하지 않고 골을 만들어내는 침착함이 돋보였다.

 

▲ 축구선수 박주영(사진)이 프로축구 FC서울과 결별하고 울산 현대로 옮긴다. 사진=FC서울 /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압권은 중국과의 결승전이었다. 페널티 박스 앞에서 툭툭 공을 치면서 돌파하는 박주영의 몸놀림에 다섯 명의 중국 수비수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열아홉 살짜리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그때 받은 느낌은 나중에 메시의 플레이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박주영은 그 대회에서 MVP와 득점왕을 휩쓸었다.

그때부터 박주영 사랑이 시작됐다. 당시 출연했던 라디오에서 박주영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댔다. "기자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으로 박주영에 대한 편애를 표현했다.

기대했던 대로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에 입단하자마자 18골을 넣으며 당연히(?)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만 20세에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스트라이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그 이후 더 뻗어가지 못했다. 뭔가 정체되는 느낌이었다. K리그 첫해 18골이 최다 득점이었다. 19세, 20세를 정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렸으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대표팀에서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으나 기대치만큼의 활약은 아니었다. 해외에도 진출했으나 프랑스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에서 간간이 소식을 전해올 뿐이었다.

K리그 255경기 65골, 국가대표 68경기 24골은 그리 나쁜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의 성적도 아니다.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점쳤던 나로서는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드디어 2021시즌에는 17경기에서 무득점이었다. 구단은 유스팀 지도자를 제안했으나 박주영은 거절했다.

객관적인 지표는 '박주영은 끝'이다. 하지만 지푸라기 하나는 울산의 감독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박주영을 아꼈던 홍명보 감독이라는 점이다. 한때 박주영을 아꼈던 사람으로서 부디 마지막 마무리는 잘하길 바란다.

 

손장환 편집위원 inheri2012@gmail.com

이코노텔링(econotelling)(http://www.econotel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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