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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축탁축(淸蹴濁蹴)] 중·후반부 득점왕 케인, '종이호랑이'서 '산중왕'으로 거듭나

--최규섭 축구

by econo0706 2022. 11. 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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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20

 

해리 케인(토트넘 홋스퍼·29)은 무척 괴로웠다. 감내하기 힘든 인고의 시간은 끝이 없는 듯 끊임없이 밀어닥쳤다. 옥죄어 오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허우적댔지만, 그럴수록 더 절망의 심연에 깊숙이 빠져드는 듯했다.

2021-2022시즌 대장정에 들어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전장은 그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불과 직전 시즌(2020-2021시즌) 득점왕(23골)과 어시스트왕(14개)을 석권하며 EPL을 호령했던 그의 사자후는 더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산 밖에 난 범이요 물 밖에 난 고기 꼴로 전락한 그로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번 시즌 전반부였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맨체스터 시티 이적설에 거세게 휩싸였던 영향을 받은 듯한 그에게 토트넘 팬들은 비난과 조소를 서슴지 않았다. ‘부진의 대명사’란 달갑지 않은 별명은 그마나 다행이었다. ‘종이호랑이’란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산중왕’은 죽지 않았다. 또한, 사라지지도 않았다. 단지 잠을 좀 오래 잤을 뿐이라는 듯 기지개를 크게 켜고 다시 힘차게 사냥에 나섰다. 그의 포효에, EPL은 들썩이고 있다. 어느듯 빈정거림은 사라지고, “역시 케인!”이라는 찬탄이 메아리친다.

누가 케인의 후반 질주를 가로막을 수 있으랴

EPL은 세계 축구계의 단연 으뜸가는 무대다. 그만큼 세계 최고 골잡이를 노리는 골 사냥 경연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패권의 향방 못지않게 득점왕 경쟁에도 뜨거운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사실 이번 시즌 득점왕 레이스는 끝난 듯한 형국이다. 팀당 26~30경기씩을 치러 종반부에 접어든 19일(이하 현지 일자) 현재, 1위와 이를 쫓는 2~3위권의 격차가 커 역전 드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모하메드 살라(러버풀)가 20골로 2~3위권을 일여덟 걸음 차로 널찍이 제치고 선두를 내달리고 있다.

 

그러나 케인이 뒤늦게나마 용솟음치는 골 감각을 뽐내면서, 점입가경의 묘미를 불러일으키는 EPL 득점 레이스다. 으뜸왕은 어려울지 몰라도 버금왕에 오를 가능성을 무척 높인 케인의 활화산 같은 골 기세다.

케인이 역전극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전망엔, 그만한 근거가 있다. 편의상 이번 시즌을 초반부(2021년 8~11월)-중반부(12월~2022년 2월)-종반부(3~5월)로 나눈다면, 케인이 중반부 이후 가장 폭발적 질주를 보이기 때문이다.

케인은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찬 골 사냥에 들어갔다. 12월(브랜트퍼드전)부터 지난 16일(브라이턴 호브 앨비언전)까지 16경기에 나서 11골을 터뜨렸다. 경기당 평균 0.69골의 무서운 페이스다(표 참조). 득점왕 레이스를 이끄는 선두 그룹 그 누구라도 압도하는 기세다.

꾸준히 골을 뽑아내며 득점왕 타이틀을 예약한 살라도 기가 질릴 만한 득점 속도다. 같은 기간 살라는 14경기에서 9골을 잡아냈다. 경기당 평균 0.64골로 케인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시즌 전체 경기당 평균으로 봤을 때엔, 케인(0.44골)에 크게 앞서는 살라(0.74골)다. 그렇지만 최근 페이스에선,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케인이다. 3월엔 더욱 그러하다. 케인은 3경기에서 4골로 경기당 평균 1.33골을 기록, 3경기에서 한 골로 경기당 평균 0.33골에 그친 살라를 네 배 차로 압도했다.

케인은 현재 득점 레이스 3위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사디오 마네(리버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위는 한 걸음 차로 앞선 디오구 조타(리버풀)다. 조타를 비롯한 이들 3명은 모두 시즌 전체 경기당 평균에서 케인에 앞선다.

그러나 외연을 중반부 이후로 좁히면 모두 케인에게 앞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 이 기간의 경기당 골 수확량을 보면, 조타는 0.43골(14경기-6골)로 빈약하다. 들쑥날쑥 기복이 심한 호날두는 0.57골(14경기-8골)로, 갈수록 득점력이 떨어지는 마네는 0.38골(13경기-5골)로 모두 케인에게 뒤떨어진다.

케인과 ‘영혼의 짝꿍’을 이루는 손흥민도 케인의 후반 스퍼트에 밀렸다. 중반부까지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며 한결같은 득점감을 뽐낸 손흥민은 시즌 전체 경기당 평균에선 엇비슷했다. 케인이 0.444골인데 비해 손흥민은 0.44골이었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 경기당 평균 득점에선, 손흥민은 0.5골(14경기-7골)로 케인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록 야구에서 나온 격언이긴 해도, 전 스포츠계에서 두루 통용되는 금언(金言)이다. 시즌 말로 갈수록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는 케인의 득점포가 어떤 마침표를 찍을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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