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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축탁축(淸蹴濁蹴)] '신계의 사나이' 메시, 쇠락에서 벗어나 '부활의 노래' 불러야

--최규섭 축구

by econo0706 2022. 11. 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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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16

 

항우는 늘 불굴의 도전 의식을 불사르며 거침없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다(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라고 자부한 그가 초패왕의 기틀을 마련한 승부수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전술인 파부침주(破釜沈舟)였다.

그랬던 항우였겄만 사면초가에 몰리자 훗날을 기약하지 않고 해하에서 스스로 생을 끝냈다. 사지에 빠뜨린 뒤 살아남는 기량침선(棄糧沈船)의 방책을 운용했던 예전의 용맹무쌍함과는 거리가 먼 최후였다.

시운이 따르지 않으니 애마인 오추마마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을 한탄한 항우는 사랑하는 여인인 우희를 외치며[‘垓下歌·해하가’] 마지막 결전의 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렬하게 일전을 펼친 뒤 죽음을 택했다.

일세의 영웅 항우가 죽음을 앞두고 보인 모습은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영웅의 몰락에선 안타까움과 함께 승부 세계가 내포한 비정함이 엿보여 씁쓸함마저 인다.

“부끄러움과 치욕도 참을 줄 알아야 진정한 사나이다. 흙먼지 날리며 다시 돌아왔으면 혹시 몰랐을 텐데(‘題吳江亭·제오강정’ 중)”라고 읊은 옛 시인(杜牧·두목)의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와 닿는다.

 

메시, ‘과거의 사나이’로 역사에 묻히고 끝나서야

‘신계의 사나이’ 리오넬 메시(35)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신들린 몸놀림으로 축구 천하를 휩쓴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1세기 반의 근대 축구 역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그는 분명히 인간계에서 보기 힘든 빼어난 존재임이 틀림없다.

축구계 으뜸의 권위를 자랑하는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빛 공) 7회(2009~2012, 2015, 2019, 2021년) 수상이 입증하는 그의 눈부신 발자취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신계의 사나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5회)보다 두 걸음 앞선, 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쌓기 힘든 금자탑이다.

그 메시가 과거형이 돼 가고 있다. 현존 최고의 월드 스타로 추앙받던 그가 2021-2022시즌 생각할 수 없었던 급격한 기울기의 하락세를 보이며 쇠락한 듯한 모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역사 속으로 묻힐 듯한 형국이어서, 그를 아끼는 수많은 세계 팬들을 우울하게 한다.

메시는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프랑스 리그 1의 파리 생제르맹으로 둥지를 옮겼다. 2003-2004시즌 바르셀로나 C에서 프로 무대를 밟은 이래 줄곧 바르셀로나에 몸담았던 ‘원 클럽맨’인 그의 이적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새 보금자리가 낯설었나 보다. 시즌 종반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메시는 팀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인상을 풍긴다. 한 시즌 전만 하더라도 라 리가를 풍미했던 그로선 지금쯤이면 리그 1도 손안에 거머쥐었을 법하건만, 나타난 사실은 180°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다.

기록에서 완연하게 드러난다. 메시는 지난 시즌 라 리가에서 35경기에 출장해 30골을 터뜨렸다. 경기당 평균 한 골에 가까운 놀라운 골 감각을 뽐냈다. 그런데 이번 시즌 리그 1에선 18경기에 나서 2골이라는 보잘것없는 사냥 솜씨를 드러내는 데 그치고 있다. 1.17경기당 한 골에서 9경기당 한 골, 그야말로 믿기 힘든 추락세다. 2006-2007시즌부터 15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의 위업을 이뤘던 풍모는 온데간데없다.

메시와 ‘영원한 맞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호날두와 비교하면 그의 하강 곡선의 기울기가 얼마나 심한지 확연히 드러난다. 역시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긴 호날두도 다소 노쇠한 기미를 띠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호날두는 한 차례 해트트릭을 비롯해 12골로 EPL 득점 레이스 2위를 달리며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그 활약상에 비하면 천양지차의 메시 활약도다.

더욱 요즘 메시의 처지를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바르셀로나 복귀설’이 심심찮게 솔솔 흘러나온다. 그의 아버지가 바르셀로나 측에 아들의 복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그런 메시를 두고 일부 안티팬들은 그를 ‘애물단지’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메시를 더욱 비참하게 하는 사실은 바르셀로나 측에서 터져 나왔다. 그의 옛 동료로서 ‘바르셀로나 왕조’를 함께 이뤘고 지금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의 입에서 말이다. 사비 감독은 “요즘 메시가 보이는 경기력으로는 바르셀로나에 설 자리가 없다.”라며 애초에 이적설의 싹을 잘라 버렸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는 “신들의 시대와 인간의 시대 사이에 ‘영웅의 시대’가 있다.”라고 설파했다. 이에 대입하면 메시는 분명 축구사에 있어 굵은 획을 그으며 큰 발걸음을 옮기는 영웅임엔 분명하다. 그가 연출한 영웅시대는 퇴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스러질 수는 없다.

“한 번의 실패로 낙심하지 않는다. 두 번의 좌절로 무너질 수 없다. 세 번의 굴욕으로 절망할 것 같은가?” 이같이 끊임없이 자신을 닦달하며, 결코 도전을 피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는 자만이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메시가 낙망하지 않고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나래를 활짝 펴고 힘차게 ‘부활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축구 역사는 그만큼 더 윤택해지리라 믿는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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