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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예고 없었던 이별, 이상민의 아쉬웠던 이적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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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17.

 

2007년 여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06-2007시즌이 끝난 후, KBL 10개 구단은 여느 때처럼 FA 시장에 돌입했다. 전 시즌, 15승 39패로 최하위권에 머무른 KCC는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FA 시장의 큰손으로 불린 그들의 행보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보완이 시급했던 건 단연 골밑이었다. 2006-2007시즌 KCC는 경기당 21.4개의 2점슛 성공했고, 이는 리그 8위였다. 리바운드 역시 평균 29.7개로 9위에 머물렀다. 외국선수들의 잦은 이탈과 교체 등의 문제가 핵심이었다.

KCC는 자유계약시장에 등장한 서장훈에게 많은 관심을 드러냈고, 서장훈 역시 KCC로의 이적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연세대 2년 선배 이상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많은 언론들이 서장훈과 이상민의 재회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12년 만에 다시 만난 한국농구의 두 영웅은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상황은 이렇다. KCC는 서장훈과 4년, 4억원에 계약을 했고, 전 시즌 연봉 순위 20위 내였던 만큼 보상선수를 내줘야 했다. 서장훈이 자동보호가 되면서 남은 보호선수 자리는 두 개. 문제는 KCC가 또 다른 주전급 전력 임재현과 5년, 2억 8천 1백만원에 계약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심각했다. 당시 KCC는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5-2006시즌을 끝으로 이·조·추 트리오의 조성원이 은퇴했고, 이상민과 추승균 역시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이가 됐다. 결국 장고 끝에 남은 보호선수 자리 중 하나는 임재현이 차지했고, 마지막 자리는 추승균의 몫이었다.

영원한 현대·KCC맨이 될 것 같았던 이상민의 보호선수 제외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KCC는 KBL 및 KCC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삼성에서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모험을 걸었다. 스타성은 여전히 KBL 최고였지만, 나이를 먹으며 기량 쇠퇴가 눈에 보였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팬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70여명의 팬들이 서울 서초 KCC 본사에 찾아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배신감, 그리고 상실감에 그들은 KCC에 등을 돌리기도 했다.

KCC는 물론 서장훈과 추승균 등 많은 이들이 이상민의 이적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추승균은 안준호 감독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KCC에 신인 지명권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수일이 지난 후, 끝내 삼성은 이상민을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지목했고, 12년 만의 재회는 물거품이 됐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당시 KBL FA 제도의 보호선수 규정이었다. 전 시즌 연봉 20위 내에 있는 선수가 타 팀으로 이적했을 시 세 명의 보호선수 명단에 자동으로 등록된다는 것부터 FA로 영입한 선수를 반드시 보호선수로 묶어야 한다는 건 모순이다(이상민 사태 이후 보호선수는 총 네 명을 보호할 수 있으며, 전 시즌 연봉 30위 내의 선수로 범위가 소폭 넓어졌다). 이와 관련된 규정은 모두 KBL이 바란 평준화와 같은 맥락의 것이다. 프로 세계에서 평준화는 넌센스다.

KCC의 선택 역시 비난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물론 이해는 된다. 이미 서장훈이 보호선수 명단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좁았다. 이상민과 추승균, 임재현 중 한 명은 무조건 떠나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재현이 제외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KCC는 다른 팀에서 이상민을 데려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만약 추승균과 임재현 중 한 명이 삼성으로 갔다고 해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민이란 존재는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삼성 역시 책임을 피하지는 못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서장훈과 임재현은 일주일간 연기된 입단식을 마칠 수 있었다. 더불어 서장훈은 자신의 등번호였던 11번을 포기하고 7번을 달기도 했다. 전 시즌까지 이상민의 등번호는 11번. 서장훈은 이상민이 떠났음에도 11번을 달지 않고, 행운의 7번을 가져갔다.

엇갈린 운명을 뒤로 한 채, 서장훈과 이상민은 2007-2008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뛴 어색한 순간이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싱겁게 마무리됐다. 이상민이 펄펄 날며 3전 전승으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룬 것이다. 서장훈 역시 3차전에서 홀로 맹활약했지만, 전패 수모를 겪어야 했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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