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타임머신] 오리온의 감독대행史…최명룡부터 김병철까지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12. 14:21

본문

2020. 03. 13. 

 

감독대행. 정식 감독이라고 불릴 수 없는 위치이지만 한 팀의 수장 역할을 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대부분의 경우 감독대행이란 이름이 붙게 되면 그 시즌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알리는 것과 같다. 무너져가는 팀을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감, 갑자기 커진 책임감에 대한 극복이 감독대행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다.

1997년 KBL 출범 이래 고양 오리온은 다양한 구단명 속에 역사를 함께해 왔다.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감독, 코치, 선수들이 존재했고 또 사라졌다. 그들 중에서도 ‘감독대행’이란 꼬리표를 달고 코트에 섰던 이도 무려 다섯 명이나 존재한다.

※ 오리온은 그동안 동양, 오리온스 등 다양한 구단명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 글에선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모두 오리온으로 통일했다.

오리온의 감독대행 역사의 시작을 알린 건 최명룡 감독이다. 1999-2000시즌이 한창이던 2000년 1월 10일, 박광호 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 코치로 자리했던 최명룡 감독은 오리온의 창단 멤버로서 박광호 감독의 빈자리를 채우며 20승 25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후 오리온은 최명룡 감독과 2000-2001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반 11연패와 7연패 등 최악의 시작을 알렸고 2001년 1월 5일, 결국 사임 소식을 전했다.

두 시즌 연속 감독의 사임은 오리온에 있어 치명타였다. 그러나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김진 감독이었다. 2000-2001시즌을 감독대행으로 보낸 김진 감독은 9승 36패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2001-2002시즌,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을 지명하며 김병철, 전희철과 함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김진 감독은 이후 2006-2007시즌까지 오리온을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명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김진 감독이 떠난 오리온의 수장 자리는 이충희 감독이 차지했다. 하지만 기존 선수들의 기량 저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김승현의 허리가 말썽을 피우며 온전한 전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이충희 감독은 2007년 12월 26일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고 빈자리는 김상식 코치가 채워야 했다.

오리온의 세 번째 감독대행이 된 김상식 감독은 2007-2008시즌을 12승 42패로 마무리한 후 2008-2009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그의 운명도 그리 길지 않았다. 2008-2009시즌이 막바지에 이른 2009년 3월 3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을 결정했다.

사실 김상식 감독은 ‘프로 대행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감독대행을 수차례 맡은 바 있다. KT&G, 오리온, 삼성, 국가대표까지 다양한 곳에서 감독대행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감독대행이란 자리는 배우는 것도 많지만 힘든 부분이 더 많다. 그동안 함께 해온 감독님께서 나가시고 그 빈자리를 내가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다. 나 역시 모시던 감독님들이 나가게 되면 동반사의를 표했다. 그때마다 구단이나 협회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신 덕분에 감독대행도 많이 해본 것 같다. 감독대행이란 어쩌면 감독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 KBL에 있는 대다수의 감독들이 대행 시절을 거쳐왔으니까. 하지만 감독대행이라는 자리가 생기려면 그 상황은 팀의 입장에선 최악이어야 한다. 많이 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겼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김상식 감독의 말이다.

김상식 감독이 떠난 오리온은 수석코치로 있던 정재훈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재훈 감독은 대행 역할을 잘 해냈고 2008-2009시즌의 마지막을 지켰다.

지난 2월 29일은 오리온의 다섯 번째 감독대행이 탄생한 날이었다. 오랜 시간 추일승 감독을 보좌했던 ‘오리온의 전설’ 김병철 코치가 새로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오리온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한 자리에만 서 있었던 전설의 감독 데뷔는 우연히 찾아왔다. 10여년간 오리온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추일승 감독이 ‘쿨’하게 떠난 뒤를 든든히 맡게 됐다.

김병철 대행은 코로나19로 인해 단 두 경기만 치러야 했지만 1승 1패를 기록,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미 오랜 시간 오리온과 함께해온 만큼 큰 문제 없이 지휘할 수 있었다.

김병철 대행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추일승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한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남은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휘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후회 없이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감독대행이란 굉장히 잔인한 자리다. 누군가가 떠난 곳을 자신이 채운다는 건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상식 감독이 언급한 것처럼 감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일 수도 있다. 명장이라 불리는 유재학, 전창진, 이상범 감독 모두 대행 시절이 있었으며 유도훈, 문경은 감독 역시 겪어본 일이다.

오리온의 2019-2020시즌은 잔여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조기 마감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6위 KT와의 격차는 8게임차로 사실상 넘어서기는 힘들다.

하지만 잔여 일정은 김병철 대행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결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2020-2021시즌의 오리온을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점프볼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