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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감동랜드의 전설을 만든 ‘포주장’ 리카르도 포웰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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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4. 12.

 

“(리카르도) 포웰이요? 제 인생 최고의 외국선수였어요.”

2014-2015시즌 인천 전자랜드와 서울 SK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펼쳐진 2015년 3월 13일 인천삼산체육관. 전자랜드는 이미 2연승을 올리며 4강 진출의 구부능선을 넘었지만, SK의 마지막 반격을 쉽게 막아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4쿼터 2분 24초부터 시작된 한 남자의 원맨쇼는 인천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설은 시작됐다.

리카르도 포웰의 KBL 데뷔는 2008-2009시즌이었다. 외국선수 드래프트서 전체 4순위로 전자랜드의 지명을 받으며 오렌지 군단의 일원이 된 것이다. 뉴질랜드, D리그(현 G리그)에서 득점 1위를 차지하는 등 스코어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다. 당시 포웰은 정영삼, 김성철, 서장훈 등과 함께하며 전자랜드를 2003-2004시즌 이후 5년 만에 6강 플레이오프로 올려 세웠다. 비록 KCC에 밀려 4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경기당 28.4득점 6.0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당시를 회상한 정영삼은 “초창기의 포웰은 약간 시건방진 친구였다(웃음). 그래도 한국에서 보낸 여러 시즌 중 이때가 가장 강력하지 않았나 싶다. 결과를 떠나 포웰을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물론 혼자 하는 플레이가 심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능력이 있었으니까 인정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성공적이었던 첫 시즌을 마친 후, 포웰의 KBL 컴백은 3년이 지난 2012-2013시즌이었다. 4강 진출에 앞장선 그는 전자랜드의 상징적인 외국선수가 됐다. 

2013-2014시즌 도중 이현호의 뒤를 이어 주장이 된 포웰. 그는 2014-2015시즌에도 주장을 맡아 전자랜드의 에이스 및 정신적 지주 역할을 소화하게 됐다. 감동랜드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포웰은 신인 및 2~3년차 선수들과 함께 ‘선발대’를 꾸려 미리 코트 훈련에 나섰다. 선수단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개인이 알아서 코트로 와 1시간 먼저 훈련을 했던 것이다. 여러 선수들이 포웰을 따랐지만, 그들 중 정효근은 특별한 존재였다.

“포웰은 주장이라는 느낌보다 아빠 같았다. 내가 실수를 해도 오히려 잘했다고 박수를 쳐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해줬다. 농구를 시작하면서 롤모델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게 그런 질문이 오면 무조건 ‘포웰’이라고 답을 한다.” 정효근의 말이다.

포웰을 오랫동안 지켜본 김성헌 전자랜드 사무국장 역시 “리더의 기질이 있었던 선수였다. 물론 성미가 불같았던 만큼 여러 불화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한 명의 외국선수가 아닌 듬직한 리더가 되어 있더라.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어주고 갔다. 전자랜드, 그리고 내게 있어 포웰은 외국선수가 아닌 동료였다”고 이야기했다.

2014-2015시즌의 전자랜드는 롤러코스터 시즌을 겪어야 했다. 9연패 뒤 6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시즌 막판에는 3연패와 4연패를 당해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했다. 그들의 6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우승후보’ SK. 한 끗 차이로 3위가 됐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갖춘 강팀이었다. 맞대결 이전 모두의 평가는 SK의 완승을 기대했고, 전자랜드의 승리를 자신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전자랜드는 무려 14개의 3점포를 터뜨리며 SK의 외곽수비를 무너뜨렸다. 물론 변수도 있었다. 애런 헤인즈가 3쿼터 리바운드 도중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며 이탈한 것이다. 공수의 핵심이던 헤인즈가 빠진 SK는 그대로 주도권을 내주며 무기력한 1차전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SK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김선형과 주희정, 코트니 심스, 김민수 등이 나서며 전자랜드를 거세게 압박했다. 헤인즈 없는 SK에 패한다는 건 전자랜드의 입장에서 심리적인 타격이 만만치 않았을 터. 하나, 전자랜드는 포웰이라는 영웅이 있었다.

시소게임이 펼쳐지던 2차전 4쿼터 막판, 포웰은 SK의 집중수비를 뚫어내며 연거푸 득점을 만들어냈다. 한 번 무너진 SK의 수비는 전자랜드의 외곽 군단까지 커버할 수 없었고, 정효근과 박성진에게 뼈아픈 3점포를 허용했다. 종료 직전, 박승리의 자유투 실패는 치명타였고, 포웰의 위닝슛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 번 불붙어버린 포웰의 손끝은 3차전에서도 식지 않았다. 3쿼터까지 7득점에 그쳤지만, 4쿼터부터 SK의 반격을 정면으로 막아내며 인천삼산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4쿼터부터 연장까지 무려 20득점을 폭격하며 SK의 대반격을 그대로 진압했다. 6위 팀이 3위 팀을 스윕한 첫 사례, 포웰은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정영삼은 “선수단 모두 포웰에 대한 신뢰가 엄청났다.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포웰이 끝내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자기만 알았다면 2015년의 포웰은 정말 슈퍼 에이스였다”라고 설명했다.

‘감동랜드 돌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동부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역시 그들의 돌풍이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2, 3차전을 내리 내줬지만, 4차전을 다시 가져오면서 시리즈는 2-2. 최종전에서의 승부는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걸려 있었다.

4강 플레이오프 5차전은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었다. 경기 종료 1분 51초를 남기고 포웰의 3점포가 림을 가르며 70-71, 턱밑까지 추격한 것이다. 이후 1분여 동안 헛심 공방을 펼친 두 팀은 결정적인 실책과 3점슛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포웰은 마지막 순간을 자신이 결정짓고 싶어 했다. 비극적인 건 동부 역시 파악하고 있었고, 이중삼중으로 그의 돌파 경로를 차단했다. 결국 포웰은 제대로 된 슛 한 번 던져보지 못하고 공격권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어진 상황에서 앤서니 리처드슨이 장거리 3점포를 터뜨렸고 시리즈는 그대로 종료됐다.

아쉬움 가득했던 2014-2015시즌, 그러나 그 누구도 포웰을 비난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의 아쉬움보다 약체로 평가된 전자랜드를 챔피언결정전 근처까지 이끌었다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김성헌 국장은 “포웰과 함께했던 그때가 행복했다. 한때나마 챔피언결정전 진출의 꿈을 꾸었으니까. 4년이 지난 지금 포웰 없이 챔피언결정전에 오게 됐다. 아마 많이 배가 아플 것이다(웃음). 선수들이나 변영재 통역 역시 SNS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같더라. 이번 챔피언결정전 때 포웰과 함께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전자랜드의 첫 챔피언결정전 꿈은 이뤄졌다. 포웰 역시 SNS를 통해 전자랜드의 우승을 응원하기도 했다. 지금은 현역 은퇴 후, 개인 사업에 치중하고 있지만, 전자랜드에 대한 소식은 언제나 살피고 있는 그였다. 비록 코트에 함께 서지는 못하지만, 전자랜드는 포웰과 함께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고 있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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