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4. 05
화끈했던 플레이, 그리고 화끈했던 퇴장까지. 9년 전, KBL을 들었다 놨다 했던 아이반 존슨을 기억하는가?
1984년 4월 10일생, 미국에서 태어난 존슨은 2008-2009시즌부터 KBL과 연을 맺었다. 강을준 LG 감독의 관심을 끌어 1라운드 8순위로 송골매 군단의 일원이 됐다. 브랜든 크럼프, 문태영과 손발을 맞춘 존슨은 54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19.0득점 7.2리바운드 1.7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 탓에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고, LG 내에서도 어우러지지 못했다. LG 박도경 홍보 차장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존슨의 가정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가 감방에 있었고, 합류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이래저래 농구에만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승부에 너무 집착했고,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결국 존슨은 2009-2010시즌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고, 야인의 삶을 살 뻔했다. 그러나 KCC가 맥 턱을 대신해 존슨을 불러들이면서 그의 농구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존슨은 2009-2010시즌, 53경기에 출전해 평균 17.2득점 6.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LG 시절과는 달리 허재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고, 마이카 브랜드의 대체선수로 합류한 테렌스 레더와 손발을 맞추며 KCC를 정규리그 3위,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려놨다.
송원진 KCC 경기운영 팀장은 “개인적으로 KCC가 가장 강했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존슨과 레더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전력 자체도 너무 강했기 때문에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바라봤었던 때였다”라고 회상했다.
우리가 아는 존슨은 그저 악동 이미지가 강했던 문제아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남다른 승부욕과 승리욕,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송원진 팀장은 “한 번은 허재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이제껏 함께해온 외국선수들 중 가장 성실한 선수라고 말이다. 사실 존슨은 훈련 때부터 100% 힘을 쏟는 친구였다. 경기 직전 훈련 때도 대부분 컨디션 조절에 힘쓰지만, 혼자 덩크를 하거나 화려한 기술을 쓰는 등 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했다. 다른 선수들 역시 그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팀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외국선수들과는 달리 존슨은 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쉬고 싶다고 했는데 허재 감독이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후문도 있다. 왜? 하루를 쉬고 오면 다음 날 120%의 힘을 쏟는 게 바로 존슨이었으니까.
한국에서의 첫 시즌을 존슨과 함께한 전태풍 역시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미국에서 우연히 볼 때가 있다. 예전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즐거워한다(웃음). 내 인생에서 가장 재밌게 농구를 했던 때였고, 성적도 좋았다”며 “존슨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무서운 아저씨 같았는데 아이 같은 면도 있었다. 자신이 만족하는 부분까지 오르지 못하면 급흥분하는 게 딱 아이 같았다. 그래도 같이 손발을 맞춰 본 선수들 중 가장 실력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전태풍은 “농구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자세를 지닌 선수였다. 가끔 승부욕이 너무 넘쳐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했던 시즌은 너무도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규리그부터 우려스러웠던 그의 돌발행동은 결국 큰 문제를 낳았다. 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존슨은 4쿼터 무득점에 그치며 14득점 5리바운드에 만족해야 했다. KCC 역시 1승 3패로 궁지에 몰렸고, 존슨의 멘탈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중계방송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존슨은 유재학 감독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보였고 문제는 점점 더 커졌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존슨은 6차전 패배 이후 심판을 향해 다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제재금 500만원과 함께 영구제명 처리됐다.
한국을 떠난 존슨은 2011-2012시즌 애틀란타 호크스에 입단해 NBA 경력을 쌓았고, 이후 중국과 필리핀, 스페인 등 다양한 곳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필리핀 리그에서조차 상대 선수에게 주먹질을 하거나 팔꿈치를 휘두르며 한국에 이어 또 한 번 영구제명을 당하고 말았다.
코트 밖에선 장난꾸러기, 그리고 성실맨이었던 존슨은 이상하게도 코트 내에선 악동으로 변모했다. 그의 행동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저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박도경 차장 역시 “어렸을 때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해 온 것이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가 그를 바로잡아줬다면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안 했을 것이다. 결국 다른 리그에서도 수많은 문제를 낳고 퇴출당하지 않았나. NBA에서도 상대 팀 감독은 물론 자기 팀 감독과도 불화설을 만들었다. 실력은 있었지만, 든든한 멘토가 없었다는 게 존슨에게는 비극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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