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4. 19
NBA에 팀 던컨이 있었다면 KBL에는 함던컨이 있다.
2007년 2월 1일에 열린 2007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모든 농구 관계자, 그리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역대급 황금 드래프트라는 기대감과 함께 농구대잔치 시대 이후 한국농구를 이끌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중앙대를 졸업한 함지훈 역시 실력만으로는 충분히 로터리픽 후보였다. 2m가 안 되지만, 묵직한 골밑 플레이 및 리바운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기에 상위권 지명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는 혹평 속에 3학년 때 당한 발목 부상이 저평가의 원인이 됐다. 김태술부터 양희종, 정영삼, 이광재 등 동기들이 차례로 지명된 후, 돌아온 10번째 순서. 유재학 감독은 함지훈을 선택했고, 머지않아 신의 한 수로 평가받았다.
함지훈의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무릎 부상을 당하며 38경기 출전에 그쳐야 했지만, 평균 16.0득점 5.8리바운드 3.2어시스트 1.2스틸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다음을 기대케 했다. 이어진 2008-2009시즌에는 출전 시간이 10분여나 줄었음에도 평균 12.7득점 4.5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 우수후보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생애 첫 정규리그 우승 역시 이때 경험했다.
앞선 두 시즌은 2009-2010시즌을 위한 쇼케이스에 불과했다. 2009-2010시즌은 김주성의 뒤를 잇는 최고의 파워포워드가 탄생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함지훈은 52경기에 출전해 평균 35분 37초 동안 14.7득점 6.8리바운드 4.0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했다. 2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MVP에 선정되며 데뷔 3년차 만에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빛난 별이 됐다.
함지훈의 진가는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김주성이 이끈 동부를 무너뜨린 후, 당대 최강으로 꼽힌 KCC까지 꺾어버린 것이다. 브라이언 던스톤과 함께 골밑을 장악한 함지훈은 챔피언결정전 6경기 동안 평균 16.0득점 6.3리바운드 5.8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 MVP의 주인공이 됐다.
양동근은 “(함)지훈이는 그때 당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선수였다. 지금처럼 3점슛을 장착하지는 않았지만, 이외에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만능이었다. 일대일 공격부터 포스트 플레이까지 다방면에서 우리의 강점이 됐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당시 함지훈에 대한 여러 평가 중 핵심은 ‘일리걸 디펜스에 도움을 많이 받은 선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KBL은 2002-2003시즌 ‘일리걸 디펜스’를 전격 폐지했다. 대신 수비자 3초룰을 도입하며 수비적인 농구를 지양했다. 함지훈은 수비자 3초룰을 가장 잘 이용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넓은 코트 비전을 이용해 자신에게 더블팀이 들어오면 곧바로 빼줄 수 있는 어시스트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유재학 감독은 “지훈이는 자신에게 더블팀이 들어오면 노마크 찬스가 생긴 선수에게 패스를 줄 능력이 있었다. 만약 상대가 일대일로 수비를 한다면 치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만큼 능력이 있었고, 막을 선수가 없었다”며 애제자를 칭찬했다.
함지훈 역시 “수비자 3초룰이 있었기 때문에 골밑 플레이를 하기가 수월했다. 지금보다 젊기도 했지만(웃음), 현재 KBL의 수비보다는 느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만약 상대가 협력 수비를 해도 빼주면 그만이었다. 그 때는 하고 싶은 농구를 마음껏 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KCC는 하승진의 부상으로 강은식과 최성근 등 언더사이즈 빅맨들이 함지훈을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같은 신체 조건이라면 함지훈이 밀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압도했고, 김효범, 김동우, 박종천 등 슈터들에게 완벽한 패스를 건네기도 했다.
송원진 KCC 운영 팀장은 “함지훈이 가장 위협적이었던 건 골밑 플레이보다 동료를 살릴 줄 안다는 것이었다. 챔피언결정전 내내 모비스의 외곽포가 승부를 갈랐는데 모두 함지훈을 의식한 나머지 외곽 수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단한 선수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1라운드 10순위의 설움은 통합 MVP라는 타이틀 속에 금방 사라졌다. 황금기였던 2009-2010시즌을 뒤로한 함지훈은 상무에서 2년을 보낸 후, 2011-2012시즌부터 다시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전무후무한 쓰리핏을 달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냈고, 2018-2019시즌 역시 유재학 감독, 양동근과 함께 개인 통산 5번째 정상을 노리고 있다.
김주성 이후 가장 강력한 파워포워드의 위력을 선사한 함지훈. 유재학 감독, 양동근과 함께 현대모비스 왕조를 구축한 그는 미래의 KBL 12인에 선정되어야 할 필수 인물이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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