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4. 26.
“문태종은 급이 달랐던 선수였어요.”
2010년 10월 16일 잠실실내체육관은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한때 유럽무대에서 제로드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한 ‘태종 대왕’ 문태종의 즉위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태종은 1975년 12월 1일생으로 미 공군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문성애 씨 사이에 태어났다. 리치몬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 스페인, 그리스, 세르비아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해왔다.
10년 넘게 유럽무대를 활보한 문태종은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프랑스 2부리그 통합 MVP는 물론 유럽컵 파이널 포 올스타, 유로컵 올스타, 3점슛 컨테스트 우승 등 최고로 평가받아왔다. 30대 중반에 이른 2000년대 후반에도 문태종의 가치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KBL의 한 구단은 문태종의 전성기 시절, 외국선수로 영입하려 했지만, 금액적인 차이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KBL 데뷔 당시 이미 한국나이로 36살이던 문태종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미 2009-2010시즌부터 ‘문코비’로 불린 문태영의 형이라는 수식어보다 유럽무대에서의 명성, 그리고 외국선수로 영입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문태종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현호는 “사실 (문)태영이 형이 왔을 때도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생각이 많았다. 근데 LG 때 하는 걸 보니 너무 잘하지 않았나. (문)태종이 형이 왔을 때도 똑같았다. 나이도 많고 예전에나 잘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같이 뛰어보니 정말 잘하더라(웃음). 확실히 외국선수로 올 뻔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자존심 센 (서)장훈이 형도 태종이 형은 급이 다른 선수라며 인정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2010 국내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몸을 푼 문태종은 국내 혼혈 귀화선수 드래프트서 전자랜드의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같은 날 열린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서 박찬희와 이정현을 지명한 KT&G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문태종의 화려한 명성은 당시 전자랜드 선수들에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다가왔다. 2010-2011시즌 전자랜드의 주장을 맡았던 신기성 감독은 “사실 국내선수들은 문태종을 외국선수처럼 생각했다. 한국말도 몰랐고, 플레이 스타일도 한국 선수들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또 외국선수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이기적인 생각도 우려됐다. 실력은 좋을 수 있지만, 팀플레이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문태종은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닌 가족 즉 팀을 생각하는 ‘맏형’의 자질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신기성 감독은 “첫인상부터 문태종은 정말 다른 선수라는 걸 느꼈다. 과묵했고, 유도훈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으려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 선수들을 사랑하는 느낌도 받았을 정도로 문태종은 인성부터 급이 달랐던 선수였다”며 극찬했다.
이현호 역시 “태종이 형은 말 그대로 형이었다. 사실 태영이 형은 둘째라서 그런지 형의 느낌은 크게 없었다(웃음). 반면 태종이 형은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운동을 했고, 선수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허허실실 웃으며 기분을 좋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라며 특급 칭찬했다.
단순히 인성만 급이 달랐던 건 아니다. 문태종은 코트에서 내뿜는 존재감 자체가 달랐다. 데뷔전이었던 삼성과의 경기에서 3점슛 3개 포함 20득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라는 맹활약을 펼친 것이다. 연장 접전 끝에 패(86-88)하기는 했지만, 문태종의 플레이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매치업 상대였던 이규섭 코치는 “정말 급이 달랐던 선수였다. 마치 대학생이 고등학생들과 같이 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볼을 다루는 능력이나 슈팅 기술은 차원이 달랐다. 이미 30대 중반이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면 한창 뛰었을 때는 아마 아시아 No.1 포워드였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문태종의 데뷔전은 팬, 언론, 그리고 농구 관계자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했다. 특히 후반과 연장에서만 15득점을 올린 집중력은 훗날 ‘타짜’, ‘4쿼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문태종의 첫 시즌은 그야말로 성공 그 자체였다. 54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17.4득점 5.1리바운드 3.2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했고, 경기당 1.8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무려 43.9%다. 전자랜드는 문태종을 비롯해 서장훈, 허버트 힐을 앞세워 창단 첫 정규리그 2위 및 4강 직행이라는 값진 결과를 냈다.
이후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영웅으로 거듭난 문태종은 전자랜드를 비롯해 LG, 오리온, 현대모비스를 거쳐 선수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다. 유재학 감독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선수 본인은 이미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호는 “은퇴를 하다 보니 태종이 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다시 알게 됐다. 한국나이로 45살 아닌가. 아이라 클라크도 뛰고 있지만, 태종이 형처럼 슈터가 40대 중반에도 저렇게 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본인이나 가족들도 은퇴를 바라보고 있더라. 어떤 선택을 하든 태종이 형을 응원해줄 것이다”라며 애정을 보였다.
길고 길었던 선수 인생의 마침표를 남겨둔 문태종. 그는 진정 한국을 사랑한 ‘슈퍼 코리안’이었다. 지난 9년간 한국농구는 문태종과 함께 웃고 울었다. 하프 코리안이 아닌 코리안으로서 말이다. 끝이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제2의 인생을 살 문태종의 앞날을 응원한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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