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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프로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2. 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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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4. 01

 

미국 존스홉킨스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저서 ‘역사의 종말’을 썼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이겼고 그래서 역사의 발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거친 오독일 수 있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이렇다. 후쿠야마 교수는 헤겔을 인용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었다. 역사 발전은 주인과 노예를 가르기 위한 대결을 통해 이뤄졌다. 주인과 주인이 싸우고 이긴 자는 주인, 패한 자는 노예가 된다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의 역사’였다. 이제 자유민주주의가 이겼다. 자유민주주의는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변증법은 끝났다. 그래서 역사도 끝났다”고 했다.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는 건 환상이다. 돈은 선수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식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선수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길 바란다. 존재 확인의 대상은 팬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감독일 수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의 삶이란 후쿠야마 교수가 말한 대로 ‘인정 투쟁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박찬호는 연봉이 50만달러로 줄었다. 그것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금액이다. 한때 1500만달러까지 받았던 그로서는 무려 30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공은 더 좋아졌다. 꿈틀거리는 몸쪽 직구도, 땅에 자석을 묻어놓은 듯한 커브도 살아났다.

 

박찬호는 LA 다저스를 택했다. 마이너리그행을 감수하는 계약을 하면서까지 다저스를 고집했다. 화려했던, 자신을 아직 기억하는 그곳에서 다시 야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인정받을 수 있다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공은 살아났다.

 

마해영은 연봉이 5000만원으로 줄었다. 4억원에서 8분의 1로 줄었다. 그런데 정규시즌 첫 안타가 홈런이었다. 돌고돌아 롯데로 돌아왔다.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팬으로부터, 구단으로부터, 감독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홈런 치고 들어오는 마해영을 힘껏 껴안았다.

 

팬들은 “마해영”을 부르짖었다. 인정받을 수 있다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방망이는 살아났다.

 

임창용의 연봉은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선수 최저급인 3300만엔이다. 옵션이 포함돼 있다고 하지만 국내 연봉 5억원보다 줄었다.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더 큰 리그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진출 선언도 기자회견도 없었다. 조용히 일본으로 건너가 사인을 했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구속은 156㎞로 살아났다.

 

연봉이 깎이니 야구를 잘한다? 우리 히어로즈가 가장 바랄 일이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순서가 바뀌었다. 돈보다 자존심을 먼저 다쳤다. 선수들은 돈으로도, 팬들로부터도, 구단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뛰는 걸까. 히어로즈의 성적이, 그래서 프로야구 전체가 걱정되는 이유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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