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4. 08
‘포도밭의 보물’이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농부는 아들들에게 유언을 했다. “포도밭에 내가 보물을 감춰놓았다”고. 평소 농사에 관심이 없던 아들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포도밭 전체를 파 엎었다. 물론 보물은 없었다. 대신 땅을 헤집어 놓은 덕에 땅의 힘이 좋아졌다. 포도가 가득 열렸고 보물 만큼이나 많은 돈을 벌었다.
농부가 말했던 그 보물이 야구에도 있다. ‘토미 존 서저리’라 불리는 팔꿈치 척골인대재건수술. 일종의 야구 직업병이다. 투수들의 팔꿈치 인대는 소모품처럼 너덜너덜해진다. 이를 새 인대로 감아 묶어 튼튼하게 만드는 수술이다. 묘하게 이 수술을 받고 나면 공이 빨라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진출한 임창용은 구속을 156㎞까지 끌어올려 화제를 모았다.
빨라진 공은 튼튼해진 팔꿈치 만큼이나 자신감도 심어준다. 어느새 팔꿈치에 남은 흉터는 강속구 투수들의 훈장처럼 여겨지게 됐다. 한화 류현진도, 삼성 오승환도 모두 이 수술을 받았다. 공이 빨라졌고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됐다.
공이 빨라진 것은 단지 인대가 다시 튼튼해졌기 때문에, 새 인대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대 수술을 받고 나면 8개월에서 1년 동안 지루한 재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수술의 창시자인 프랭크 조브 박사는 수술 뒤 재활에 이르는 과정 프로그램까지 고안했다.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라고 불리는 이 훈련은 단순하고 지루하기로 악명높다.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씨는 “매일 새벽 인천에서 서울까지 재활훈련을 다녔다”면서 “아비로서 안쓰러워서 못 볼 지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지루한 훈련이 구속 증가의 비밀이다.
야구를 직업으로 삼은 투수가 지친 팔을 1년이나 쉬면서 꾸준히 집중 훈련을 할 기회는 사실상 수술 말고는 없다. 팔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가 더해진다. 팔꿈치 인대뿐만 아니라 팔 전체가 좋아지는 효과를 낳는다.
삼성 권혁은 팔꿈치 수술 뒤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150㎞ 왼손 강속구 투수로 거듭났다. 권혁은 “인대가 강해진 느낌보다는 팔 전체가 강해진 기분이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팔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농부의 아들들이 포도를 거둔 이듬해, 다시 땅을 파지 않는다면 포도는 열리지 않는다. 인대 수술도 마찬가지다. 증가한 구속은 대개의 경우 3년을 고비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칫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꾸준한 훈련과 관리가 필수다.
한화 정민철은 “이제 나는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재활 기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도 손에서 악력기를 놓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포도밭 보물 효과’가 또 있다. 부산발 롯데 열풍. 누군가는 “4년째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던 회사 선배와 롯데 얘기로 최근 친해졌다”고 했다. 야구는 사람을 연결한다. 롯데가 야구 잘해 얻은 또 하나의 보물이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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