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3. 25
옛 중국 문헌에도 한민족은 ‘음주와 가무음곡을 좋아한다’고 기록돼 있다. 음주는 둘째치고라도 가무를 좋아한다는 것, 사실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꼭짓점 댄스’가 열풍이었다. 지난해에는 ‘텔미 댄스’가 전국을 휩쓸었다. 이 춤을 춘 소녀그룹은 최근 공정선거를 알리는 캠페인 광고에도 등장해 춤을 추고 있다. 요즘엔 ‘ET 춤’이 인기란다.
춤은 축구장에서도 보인다. 골 세리머니에는 텔미 댄스도 나오고 꼭짓점 댄스도 나온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오노 댄스’도 있었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추는 춤은 겨우 5~6명의 치어리더 춤밖에 없을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외국인 타자 알렉스 라미레스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이른바 ‘라라라라이 댄스’ 홈런 세리머니다. ‘라라라라이 댄스’는 일본 개그콤비 후지사키 마켓토의 코믹 댄스.
라미레스가 경기 도중 홈런을 친 뒤 이닝이 끝나고 좌익수 수비에 들어서면 왼쪽 담장 너머 팬들이 “라미레스”를 외친다. 이럴 경우 대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끝이지만 올 시즌 라미레스가 준비한 것은 달랐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음악에 맞춰 라미레스가 ‘라라라라이 댄스’를 시작. 두 손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며 발을 번갈아 굴러 깡충깡충 뛰는 이 춤을 추면 팬들도 함께 춤을 춘다. 이기고 있을 때는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지고 있을 땐 구장 분위기를 역전 모드로 변화시킨다는 게 라미레스의 생각이다.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팬들이 원숭이를 흔드는 ‘랠리 몽키’보다 뛰어난 효과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삼성 심정수가 대구구장에서 홈런을 친 뒤 좌익수 수비로 돌아가 ‘꼭짓점 댄스’를 춘다면, 롯데 이대호가 홈런을 날린 뒤 3루 수비에 들어가 ‘텔미 댄스’를 춘다면, 이미 지난해 1루로 달리다 넘어져서 ‘큰웃음’을 안겼던 한화 김태균이 올 시즌 홈런을 치고 1루 수비 시작 전 ‘저질 댄스’를 한 번 춘다면….
롯데 정수근은 사직야구장에 어울린다. 지난해 개인통산 최다 홈런 기록(4개)을 세운 정수근이 홈런 친 뒤 외야에서 ‘퐁퐁퐁 댄스’라도 한 번 춘다면 부산팬들에겐 더 짜릿하겠다.
하지만 쉽지 않겠다. 최근 만난 한 구단 관계자는 “두산 선수들은 지나치게 오버해서 다른 구단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하긴 켄 그리피 주니어는 상대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홈런을 치면 항상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라운드를 돌았다. 김성근 감독은 “경기 시간에만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좋은 아이템”이라고 했지만 김인식 감독도, 이광환 감독도 “상대도 웃을 수 있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지나치면 빈볼 아닌 빈볼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야구의 엄숙주의가 사라진 그 다음에야 홈런 댄스를 볼 수 있겠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포도밭과 팔꿈치 (0) | 2023.02.14 |
---|---|
[베이스볼 라운지] 프로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0) | 2023.02.12 |
[베이스볼 라운지] 거침없는 신인 입담 (0) | 2022.12.24 |
[베이스볼 라운지] 소가 웃을 ‘FA 법대로’ (0) | 2022.12.21 |
[베이스볼 라운지]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0) | 202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