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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농민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2. 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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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관계인 것 같다.

 

심지어는 국정을 책임 진 대통령까지도 양극화(兩極化)라는 단어를 써 가며 이 문제 대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까지 언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는 인류 유사(有史) 이래의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대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본다면 유물사관(唯物史觀)이 아니더라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투쟁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무엇을 가진 것이냐에 따라 양쪽을 나눈다면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랐으리라.

 

아마도 그 옛날에는 힘 즉, 체력(體力)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분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맘모스를 맨 손으로 때려잡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우열을 분류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로 역사에도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 다음으로는 권력(權力)을 자진 자와 못 가진 자, 실력(實力)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또는 미모(美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으로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또 요즘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력(財力)이 그것을 나누는 기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뭉뚱그려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뭐든 한 가지를 가진 자는 그 나머지도 같이 가질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요즘 현대자동차 사태를 보면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만 느껴졌던 노동자들조차도 몇 몇이나마 자기들의 힘을 이용해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상대방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보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개념은 이제 상대적(相對的) 개념의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시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순위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두 부류가 있다. 바로 재벌과 농민들이다.

 

한·미FTA반대 논쟁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여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바로 재벌과 농민의 관계인 것 같다. 강대국의 대자본이 들어오면 재벌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농민은 다 죽는다. 또 재벌들의 수출을 위해 농민들의 생명줄인 쌀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죽이는 일이다라는 논리로 농민뿐만 아닌 전(?) 피지배계층이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촛불을 들고, 붉은 머리띠를 매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재벌과 농민의 처지는 바뀌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보도에 굉장히 희한한 일이 있었다. 농민이 재벌을 이기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아마 우리 역사 상 최초로, 동학혁명군도 이루지 못했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그 사건이 바로 우리 세대,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농협, 현대 야구단 인수'가 바로 그 일이었다. 그 헤드라인 밑에는 꽤 구체적인 기사까지 나와 있었다. '농협 구단 이름은 농촌사랑야구단'이라는 기사로부터 '현대가 인수했던 금액보다 농협이 인수하는 금액이 훨씬 더 싼 값이다'는 등의 기사들이 연이어 활자화 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우리 역사 상 처음으로, 아니 앞으로도 거의 힘든 농민의 쾌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고 본다. 권력의 앞잡이, 정경유착(政經癒着)의 주범, 차떼기 정치의 한 축, 사회 양극화 현상의 수혜자, 구조조정이 제1번 당사자, 세금 포탈의 악마, 경영권 세습의 당사자, 사회악의 보스인 그 재벌이 하다 하다 못해 내놓은 그 기업을 무지렁이 농민들의 힘으로 인수하는 강육약식(强肉弱食)의 현장을 우리가, 아니 내가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를 역사적 사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드디어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아주 기이한 현장체험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농협에서 인수 이유로 밝힌 여러 가지 이유는 모두 다 자기 자랑뿐인 보도자료 일 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인수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 그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는 후속보도를 보았을 때, 나는 '역시나…'라는 단어를 뇌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자유무역이라는 것 때문에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 줄 모르는 내가 아니다. 앞으로 농민들의 행복을 위해 농협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조차도 모르는 나도 아니다.

 

하지만 프로 야구단을 인수하는 데 들일 돈이 있다면 그것으로 농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논리에는 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일까. 왜 반대론자들은 즉각적인 부분만을 생각해 내놓고 그것으로 여론 몰이를 해 나가려는 것일까.

 

아마 그들도 재벌 기업들이 돈도 되지 않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귀(餓鬼)같은 재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돈벌이도 되지 않는 프로구단에 쏟아 붓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제 새로운 농민상을 만들어 나가면 안 되는 걸일까? 농촌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새로운 영업시스템으로 판로를 개척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일까?

 

서울을 프랜차이즈로 하는 야구단이 가슴에 농협 파머스(Farmers)라는 이름을 달고 열심히 뛰어 "이번 페난트레이스 우승을 우리를 성원해 주신 전국의 모든 농민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인터뷰를 한다면 정말 농민들은 "저 돈으로 비료나 사주지 뭐 되지 못한 짓거리들을 하는 겨…"라고 혀를 끌끌 찼을 것인가.

 

정말 그럴 것인가. 내가 농촌의 심각한 상황을 눈곱만치도 모르는 철부지 도회인이라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인가. 광고의 홍수 속에 세뇌가 되어 제 주인 죽는 줄은 모르며 마케팅이라는 어쭙잖은 모멘트만 들고 나와 돌팔매질을 받으려고 하는 바보란 말인가.

 

그래.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어디 인간이 경제원칙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이던가. 지금 우리 농촌이 젊은이 하나 없는 노인들만의 농촌이라 그런 프로구단 같은 것은 갓 쓰고 양복 입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짓이라고만 할 수 있는 일이던가.

 

이제 우리 농촌도 쌀농사·고추농사 지어서 한해 한해 넘기는 농촌은 아니라고 그들 스스로도 인정한다면, 칠레의 농산물은 우리에게도 수출이 되는데 우리의 농산물은 개방이 되면 쓰러져야 하는 것이라고 울부짖기 이전에 개방화에도, 또 그 이후에도 살아남는 우리 농촌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그들이라면 인수 반대 이전에 인수 후 어떤 식의 경영이 우리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가도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농민이 재벌을 인수했다는 그 사실에 나름대로 용기를 가지고 농촌을 더욱 사랑했을 젊은 농군이 전혀 없었으리라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200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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