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국농구연맹(KBL) 출범 후, 팬 서비스에 대한 이해는 시간을 거슬러 점점 변해 갔다. 한국농구 최대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농구대잔치’ 시절, 마땅한 팬 행사 없이도 스타 선수들은 수천 통의 팬레터를 받아갈 수 있었다. 그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떨어지는 인기도, 스타급 선수들이 자취를 감춘 현재, KBL의 팬 서비스는 점점 진화해 나가고 있다.
농구대잔치 세대로 구성된 KBL 초창기 시절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이상민, 우지원, 김훈, 전희철 등 미남 스타들은 여전히 ‘오빠부대’를 이끌었고, 농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당시 팬 서비스는 단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팬 사인회만 열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선수들 역시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다.
이흥섭 원주 DB 홍보차장은 “프로 초창기만 하더라도 팬 사인회 개념의 행사가 많았다. 지금처럼 다양하고 빈번하게 행사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인기는 더 많았던 것 같다. 농구대잔치 시절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사인회 위주였어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이야기했다.
2000년대 초, 신인 선수였던 은희석 연세대 감독 역시 “당시에는 팬 서비스라면 무조건 사인회였다. 여러 군데에서 불러줬고, 선수들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쉬고 싶은데 억지로 나가는 선수들도 있었다(웃음). 그래도 그만큼 농구의 인기가 많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팬 사인회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김성태 KBL 운영팀장은 “지금 이야기하는 팬 사인회와 규모 자체가 달랐다. 그때는 선수들과 팬들의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지금은 미디어의 발전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선수들의 얼굴 한 번 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고, 농구에 대한 사랑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규섭 삼성 코치는 “지금은 팀 단위로 팬 사인회를 많이 하지만, 예전에는 선수 개개인별로 부탁을 받았다. 사실 농구대잔치 시대와 지금의 인기도를 비교하는 건 힘든 일이다. 스폰서 계약도 활발했고, 그에 따른 사인회도 정말 많은 시기였다. 아무래도 우리를 찾는 이들이 많으니 그랬던 것 같다. 하루에 두 번씩 행사를 다닌 적도 있어 힘들기는 했다(웃음). 그래도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팬 서비스의 방식이 팬 사인회 위주로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1997년 2월, 광주 나산의 선수단은 단체로 염색을 하는 등 팬들에게 자신들을 어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고 지역 내에 행사를 꾸준히 열며 진정한 프로 스포츠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KBL 역시 스타 선수들을 활용해 많은 행사를 열었다. 물론 팬 사인회가 주를 이루는 등 단순한 행사가 지배적이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현식 KBL 홍보팀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올스타전 팬 사인회는 우리의 핵심 홍보 행사였다. 물론 지금처럼 다양한 행사가 있지는 않았지만, 팬들에게 KBL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며 “시대 흐름에 따라 팬 서비스적인 방법이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일부 선수들의 불성실한 태도는 팬들은 물론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한 농구 관계자는 “지금 선수들은 정말 순둥이들이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과거 몇몇 선수들은 귀찮다는 내색을 팬들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요즘 야구가 팬 서비스 문제로 말이 많지 않나. 과거 농구도 그랬다. 어떤 선수는 올스타전 전날, 술 냄새를 풍기며 코트에 나오기도 했다. 힘들어도 팬들 앞에서는 웃음을 보이는 지금 선수들과는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구 관계자는 “우지원, 김훈, 김주성, 양동근 등 내가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팬들의 관심을 감사히 여겼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팬 서비스에 대한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불만을 겉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으면, 참고 넘기는 이도 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많이 좋아졌다. 팬 서비스 문화가 성숙해졌기 때문이다”라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KBL 역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점점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노쇠화를 겪고 있었고,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얼굴들이 나오지 못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때부터 KBL 및 각 구단들의 팬 서비스 방식은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 그동안 선수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던 팬 서비스가 진정한 의미로 팬들에게 다가가게 된 것이다.
김성헌 인천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과거 초창기 시절에 팬 서비스 문화가 구단이나 선수들에게 수동적인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나 2000년대 중반에는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시 되는 문화로 바뀌었다 할 수 있다(물론 선수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예전에는 성적이 우선, 팬 서비스는 이후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도자들도 ‘팬들이 먼저다’라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 것이다. 팬 사인회 위주에서 벗어나 연고 지역 내 학교, 팬들에게 직접 다가가 홍보하는 것 역시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황금 세대’라고 하는 2000년대 중후반 선수들 역시 직접 팬 관리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점점 발전하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꽃을 피우는 것 같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과도기였던 2000년대 중반을 지난 KBL 및 각 구단들은 서서히 팬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수 위주에서 팬 위주로 흐름이 바뀌면서 마케팅의 발전이 이뤄졌고, 팬 서비스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 역시 달라졌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KBL의 팬 서비스 역시 단계를 거치며 점점 더 발전해 나가고 있다. 수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팬 서비스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데도 대접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 팬들에게 잘해라.” -최희암 감독-
팬 사인회 중심으로 이뤄졌던 한국농구연맹(KBL) 출범 초기 팬 서비스는 시간이 흘러 점점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이어온 스타 선수들이 점점 노쇠화를 겪었고, 이제는 수천, 수만의 팬들을 이끌 스타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팬 서비스의 방식은 변화를 필요로 했고, KBL은 물론 구단 역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2007, 2008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농구 대잔치 세대를 대신할 예비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다. 이른바 ‘황금 드래프트’로 불리며 수많은 농구 팬들을 다시 불러모았고, 구단들 역시 스타 마케팅을 펼쳤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선수들의 마인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젊은 세대’였던 선수들은 팬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하면서 선수-팬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 과거보다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 역시 주효했다.
김성헌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선수들이 직접 팬 관리에 나선 시대가 바로 2000년대 중후반이다. 농구대잔치 이후 김승현, 김주성, 방성윤에 이어 황금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팬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후 2010년대부터 더 젊고 팬 친화적인 선수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팬 서비스 문화는 급속도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했다.
긍정적인 변화 속, 모든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팬 서비스 행사가 많아짐에 따라 형평성을 요구하는 단체가 등장했고, 구단들은 관계 형성에 차질이 없는 차원에서 행사를 줄이기도 했다.
이흥섭 DB 홍보차장은 “이런저런 행사가 있으면 예전에는 대부분 소화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업계에서 형평성을 요구하는 사례가 수차례 나타나 곤욕을 치른 적도 많다. 예를 들자면 A에서 행사를 하면 경쟁업체인 B에서도 행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결했지만, 당시는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팬 서비스의 문화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우리 지역 선수라는 인식 역시 강해졌다. 물론 KBL 출범 초기에도 연고 지역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색이 연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연고 지역을 강조하는 팬 행사가 수차례 열리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지역 연고제다. 현재 KBL은 2022-2023시즌이 끝난 후, 지역 연고제가 완벽히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2016년 경기력 향상과 마케팅 활동 강화를 목적으로 합숙소 폐지와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고, 이제 단 3년이 남은 상황이다.
이미 DB, KGC인삼공사, 전자랜드, 오리온은 지역 연고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구단들이다. 그러나 3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SK와 삼성, KT, 현대모비스, LG, KCC는 수원과 용인에서 비시즌을 지내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6개 구단이 연고 지역 행사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시즌만 되면 선수들을 볼 수 없는 해당 지역 팬들은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준우 KBL 사무차장은 “2023-2024시즌이 시작되기 전, 모든 구단들은 각자의 연고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당장 큰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권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의 아쉬움도 이해한다. 그러나 팬들을 위해선 최고의 선택이다. 선수들과 팬들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구 관계자 역시 “구단, 그리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시즌이 아닌 비시즌에도 그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에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비시즌 기간 동안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오면 그때나 잠깐 들여다보는 정도다. 선수들의 마인드, 그리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고 해도 빈도 수가 적으면 효과는 크지 않다. 결국 지역 연고제는 팬들을 위해 시행돼야 할 당연한 일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은희석 연세대 감독은 “농구인, 그리고 일반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지역 연고제가 빨리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연세대 감독인 나 역시 연희동을 걸어 다니다 보면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다. 대학 감독인 만큼, 프로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지역, 내 선수라는 인식이 강해져야 팬들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팬 서비스의 의미와는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거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선수 연고제’ 역시 주목해야 할 제도다. KBL은 2017년부터 지역 연고제 활성화 및 농구 유망주 양성을 위해 선수 연고제를 도입했다. 각 구단은 산하 유소년 클럽 등에서 육성하는 만 14세 이하 선수를 대상으로 매년 최대 2명, 5년간 최대 10명과 연고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별도의 드래프트 없이 해당 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 현재 KBL에 등록된 선수 연고제 선발자는 총 9명. 안세환, 편시연(SK), 김동영(LG), 김경진(오리온), 조장우, 김권민(삼성), 장민규, 표시우(DB), 김민규(전자랜드)로 모두 엘리트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해 정식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구단의 지속적인 지원 속 성장한 지역 연고 선수라면 팬들이 받아들이는 의미 역시 클 수밖에 없다. 해당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구단에 입단해 뛴다는 건 낭만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값진 팬 서비스를 찾기는 힘들다.
이준우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선수 연고제로 등록된 9명을 시작으로 해마다 더 많은 인원을 선발할 생각이다. 초기 단계인 만큼, KBL이나 구단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선수 연고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팬 서비스라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소속감을 갖고 자란 선수가 팬들과의 교감 형성을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시작은 미미할 수 있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다양해진 팬 서비스 방식에도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자세다. 다행히 KBL 선수들의 주변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팬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있었고, 대화나 사인 등 소통에 대한 거리감도 없었다.
정민규 SK 매니저는 “김선형 세대의 선수들부터 젊은 세대가 KBL에 대거 들어오면서 문화가 바뀌고 있다. 우리 팀의 경우 (김)선형이가 솔선수범하며 팬들과 거리감을 좁히니 후배들도 알아서 팬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고 있다. 과거의 딱딱했던 선수들과는 달리 부드럽고 친근한 선수들의 등장이 팬 서비스의 발전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우리를 비롯해 다른 구단들 역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런 부분은 팬들이 농구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주는 데 한 몫 하고 있지 않나 싶다”라고 전했다.
팬 서비스 방식의 진화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선수들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개인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특정 행사가 있을 때만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겠지만, 개인적인 소통을 통해 팬들과 스킨십을 한다는 건 팬 서비스 방식이 또 한 번 변화했다는 걸 의미한다.
KBL, 그리고 각 구단은 지금도 팬 서비스를 더 확실하고,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다. 농구 인기의 하락, 낮아진 관심 등 긍정보다 부정이 더 앞선 농구이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노력이 꽃을 피울 때, 농구는 다시 부활 할 수 있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점프볼
[타임머신]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스트 '원 클럽맨' (0) | 2022.11.11 |
---|---|
[타임머신] 인생의 전환점이 된 보상선수 지명, 송영진의 인생역전 (0) | 2022.11.11 |
[타임머신] 모비스가 일군 기적, 2014 윌리엄존스컵 우승 (0) | 2022.11.10 |
[타임머신] 기대와 실망이 공존했던 남자, 제럴드 허니컷 (0) | 2022.11.10 |
[타임머신] '언더 독 장인' 정상일 감독의 파란만장한 중국 이야기 (0) | 2022.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