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30
2007 한국시리즈는 ‘불면(不眠) 시리즈’였다.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다. 밤을 낮삼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잠못드는 밤, 비 대신 야구가 내렸다.
SK 김성근 감독은 23일 2차전을 패한 뒤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다. 새벽 4시까지 야구장 감독실에 남았다. 밤새도록 선발 타순을 고민했다.
뿐만 아니다. SK 와이번스 신영철 사장도 뜬눈으로 보냈다. “2시에 간신히 잠들어 5시에 깨는 게 시리즈 내내 반복됐다”고 했다. 2차전도 지자 홧김에 술을 마셨고 다음날 새벽 5시30분이 돼서야 잠이 들었다.
민경삼 운영본부장은 시리즈 내내 눈이 벌겠다. “LG 시절까지 포함하면 4번째 한국시리즈인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한국시리즈의 중압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첫 우승은 그렇게 불면의 밤을 지샌 끝에 오는가 보다. 한국시리즈 MVP 김재현도 잠을 자지 못했다. 2차전이 끝난 뒤 겨우 3시간을 잤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김재현이 가장 빛난 것은 4차전이었다. 그날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3시간밖에 못잔 채 출전했다.
잠자는 대신 밤새도록 야구 생각을 했다. “눈을 감고 리오스와 수백번을 싸웠다.” 이른바 ‘상상 야구’. 1회부터 9회까지 머릿속으로 야구를 한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주자상황, 볼카운트를 상상한다. 그리고 상상 스윙. 자신감을 찾았고 4차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때렸다.
그런데 진짜 잠을 못잔 사람은 포수 박경완이다. 시리즈가 계속된 8일 동안 겨우 20시간이나 잤을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다.
원래 잘 못잔다. 이런 큰 경기를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얼마나 잤냐’는 질문에 “에이, 잘 알면서…”라고 눙친다. 대신 밤새도록 고민을 거듭했다. “1차전과 2차전에는 내 실수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3차전부터 실수는 없었다. 잠을 못자면 집중력이 높아지는 묘한 스타일이다.
데이터를 지웠다. 순간순간 허점을 노렸다. 박경완은 “3차전부터 집중력을 높였다. 알려진 약한 코스를 공략하는 대신 그때그때 자세를 보고 허점을 노렸다”고 한다. 역(逆) 공격이다.
큰 경기에서 포수는 수비하지 않는다. 포수의 공격은 가장 무서운 무기다.
3차전 이후 박경완은 홈플레이트 뒤에서 ‘공격’을 했다. 이종욱은 몸쪽 공에 속절없이 당했고, 김동주는 높은 공에 연방 방망이가 돌았다. 잘 친다고 생각했던 쪽이 오히려 약점이 됐다. 두산의 빠른 발을 잡은 것도 박경완 덕분이었다.
그리고 박경완은 울었다. 1998년과 2000년 현대에서 두번 우승했을 때는 흐르지 않던 눈물. 박경완은 “이전에는 안울었는데 정대현을 안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불면으로 붉어진 눈은, 눈물로 더 붉어졌다. 그눈, SK의 붉은 셔츠를 닮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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