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06
패령자계(佩鈴自戒). 방울을 차 스스로 경계한다는 뜻. 조선 선조시대 형조판서를 지낸 선비 이상의에게 얽힌 얘기다. 섣부른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허리에 방울을 찼다. 서두르다가 방울이 울리면 이를 떠올리고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방울소리가 줄었다. 중년이 됐을 때는 방울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맡고 있는 두산 김경문 감독도 방울을 찼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김감독의 등 뒤에 항상 달려있다. 쉬지 않고 경계를 하게 하는 자신의 등번호다.
김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74번을 달았다. 두산 감독이 됐을 때도 74번을 유지했고, 대표팀 감독 유니폼에도 74번이 달려있다. 김감독은 “행운을 뜻하는 7번과 액운을 뜻하는 4번을 함께 붙여놓은 번호”라고 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항상 나쁜 일이 따라온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항상 나쁜 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감독의 야구 철학인 동시에 김감독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도록 하는 방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두산에는 나쁜 일이 이어졌다. 에이스 박명환이 LG로 떠났고, 유격수 손시헌은 군대에 갔다. 포수 홍성흔도 다쳤다.
나쁜 일은 좋은 일이 됐다. 리오스가 MVP급 투수가 됐고, 트레이드해 온 이대수는 유격수로 펄펄 날았다. 포수 자리에는 때마침 제대한 채상병이 자리를 메웠다. 미리미리 준비한 덕이다. 대표팀 훈련 중에도 그 마음가짐은 여전하다. 해외파 투수들이 합류하지 않은 데다 이승엽, 구대성이 부상으로 빠졌다. 하지만 “대만전을 필승으로 뚫겠다”고 선언했다. 나쁜 일에 낙담하다가는 좋은 일을 가로막는다. 7번을 4번 앞에 둔 이유다.
감독이 등번호를 자신의 경각물로 삼는 경우는 야구 본고장 미국도 마찬가지다. 뉴욕 양키스의 새 감독이 된 조 지라디는 지난 3일 취임식 날 “우리가 그동안 몇번 우승했죠”라고 물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는 양키스가 26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지라디 감독은 27번이 적힌 자신의 유니폼을 입었다. 최근 7년 동안 못한 우승, 자신이 27번째 우승을 따내겠다는 의지였다. 등 뒤의 27번은 시즌 내내 지라디 감독을 깨어 있게 할 것이다.
조 토레 감독은 LA 다저스로 옮겼다. 양키스 시절 자신이 달았던 6번을 그대로 달았다. 취임식에서 “다저스의 옛 주장 칼 푸릴로가 달던 번호라 흥분된다”고 했다. 게다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횟수 6회. 6번은 양키스맨이 아니라 다저스맨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각오다.
프로야구 롯데의 새 감독 선정이 늦어지고 있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등번호는 84번이었으면 좋겠다. 2000년 이후 8년 만에 4강이란 뜻이다. 적어도 그 정도 무게는 등에 지고 뛰어야 한다. 부산팬들은 가을 야구가 너무 고프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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