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23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1-0으로 두산이 앞선 5회초 1사 만루 기회. 김동주의 타구가 SK 2루수 정경배 뒤쪽으로 떴다. 뒤로 돌아 잡기는 했지만 워낙 짧은 탓에 3루주자가 홈에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종욱은 뛰었다. 1루수 이호준이 포수 앞에서 커트 플레이를 했고, 악송구가 됐다. 쐐기 추가점. 설상가상 SK 포수 박경완은 오른쪽 고관절을 다쳤다.
SK 김성근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두산 선수들에 대해 선입관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발이 빠르다는 선입관. 그래서 서두르다 일을 그르쳤다. 3회 2루수 정경배의 실책도 선입관 때문이었다.
야구를 지배하는 것은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선입관은 단기전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거론되는 ‘저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04년까지 80여년간 우승을 못했던 ‘밤비노의 저주’ 보스턴 레드삭스는 올해도 기적처럼 월드시리즈에 올라갔다. 한번 깨진 저주는 수명이 다했다. 반면 인디언 추장 얼굴의 희화화가 문제인 ‘와후의 저주’는 유효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패 뒤 3연승, 그리고 다시 3연패를 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도 유효했다.
물론 저주는 미신에 가깝다. 하지만 경기 후반, 혹시나 하는 생각은 플레이의 발목을 잡는다. 2007 ALCS 4차전 영웅이었던 클리블랜드 3루수 케이시 블레이크는 2-3으로 따라붙은 7회초 1사 1·3루에서 병살타를 때리더니, 7회말 수비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많은 이들은 그게 바로 저주라고 생각한다.
선입관은 그래서 무섭다. 그리고 선입관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몰래카메라 파문’을 낳았다. 두산 불펜 포수가 SK 창고에서 카메라를 봤는데 사인을 훔치려는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했다. 그 얘기가 선수단에 퍼져 폭로전이 이어졌다. 나중에 두산이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됐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파문은 ‘SK는 항상 이상한 수를 쓴다’고 생각한 두산의 선입관 때문이었다.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승부에서 유리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선입관을 심어주는 수가 쓰이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은 시즌 중 두산 리오스의 투구폼에 선입관을 심어주려 애를 썼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리오스가 1차전을 이겼다.
김 감독은 1차전에서 또 하나의 수를 썼다. 이날 도루 저지를 위한 피치드 아웃을 무려 6개나 했다. 그 중 1개로 도루하던 민병헌을 잡아냈다. 김감독은 “이제 함부로 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피치드 아웃이 선입관으로 자리잡히면 두산의 발을 잡는다는 노림수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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