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의 비문 내용이 통과 되자, 이번에는 글씨를 누가 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글을 지었으니, 이제 그 글을 옮겨야 하는 작업…원래 삼전도비는 몽고문, 만주문, 한문 이렇게 3종의 문자로 쓰여 지기로 결정 난 상황. 결국 당대 해서체로 일가를 이룬 오준(吳竣)이 글씨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인조17년 1639년 그 말 많고 탈 많은 삼전도비는 지금의 송파구 삼전동에 세워지게 되었다. 뭐 이렇게 보면, 별 탈 없이 삼전도비를 세운것 처럼 보이는데…. 그 별탈이 인조 생존 당시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삼전도비를 세우고 30년이 흐른 뒤에 탈이 생겼던 것이다.
“음…이경석이 그 할아버지가 꽤 오래 여기 있었죠?”
“대단하신 양반이죠. 50년 동안 임금만 세분을 섬겼으니까요. 더구나 인조대왕 시절에 삼전도비 비문을 써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니까….”
“그래, 그래…나이도 칠순이 넘었는데, 어때? 이번에 기로소(耆老所 : 조선시대 나이 많은 문신들을 대우하기 위해 만든 기구로서 정2품 이상의 관리로 나이 70이 넘어야 들어갈 수 있다. 기로소에 일단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을 올릴수 있게 되는데, 조선이 망할 때 까지 그 이름이 올라가 있게 된다. 주로 왕의 자문역을 맡았다)에 들어가야 겠지?”
“그렇겠죠?
현종 5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얼마 뒤인 현종 9년 1668년 이경석은 궤장(●杖 : 지팡이다. 신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예이다. 보통 궤장을 받을 때는 궤장연이란걸 열고, 이를 통해 궤장과 안석案席을 받는다)을 받기에 이른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고, 한평생 나라 일에만 온 신경을 다 쓴 이경석의 충성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해라. 네들도 인마, 이경석 옹 같이 충성을 다하면 일케 대접받을 수 있어. 알았어?”
자 문제는 이 궤장연(●杖宴)에서 이경석 인생이 살짝 꼬이게 되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바로 산림영수 송시열이 치고 나온 것이었다.
“네가 말야…늙도록 편안하게 살았던 건 왕이 대우했으니까 그런건데…그게 우연일까?”
이때 송시열이 했던 말 ‘늙도록 편안하게 살았다’라는 뜻의 수이강(壽而康)이란 어구가 문제였다. 이 수이강이란 말은 주자가 금나라에 아첨해 만수무강을 누린 손적이란 놈을 씹을때 썼던 문구였던 것이다. 30년 전 삼전도비를 써서 청나라에 아첨했으니, 이 만큼 잘 산거 아니냐는 것이다.
이때는 뭐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1년 뒤 이경석과 송시열은 이 수이강(壽而康)이란 어구 하나 덕분에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게 된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경석은 원로로서의 대접과 그때 당시…
그러니까 삼전도 비문을 썼을때의 정치역학적 관계가 인정되어 상당 부분 동정표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유생들의 여론이었는데, 이경석이란 원로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당시 우암 송시열…산림영수이자 궁궐 밖의 왕이라 불리던 우암의 기세에 밀려 아무런 논평도 내지 못하게 된다.
“야야, 시열아. 네가 좀 심했다. 이경석이 그 할아버지가 그때 그러고 싶어 그랬겠냐?”
“그래, 시열아. 고마 해라. 그 아제도 욕 묵을 만큼 묵었다 안카나…. 고만 접자 마.”
야! 네들 춘추대의(春秋大義)가 뭔줄 아냐?”
“야, 지금 이게 춘추대의랑 뭔 상관이냐?”
“왜 상관없어! 청나라 오랑캐한테 목숨을 구걸하면서, 공덕비를 만든 게….”
“야야, 그 할아버지가 그러고 싶어 그랬겠냐? 살다보니까 어쩔수 없이 한 거 아냐! 누군 뭐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어 쓰냐? 그만 오바하고 이 정도에서 끝내!”
사태는 대충 이렇게 유야무야 마무리 지었지만, 송시열의 이경석에 대한 공격은 그 뒤로 또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현종 12년 이경석이 죽자, 그 신도비명을 박세당이 짓게 된다. 송시열은 목숨 걸고 박세당을 짓밟았고, 박세당은 사문난적(斯文亂賊 : 유교의 교리를 어지럽히는 언행을 했다는 것. 사문난적으로 몰리면 그대로 퇴출당한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는 것이다)으로 몰리게 된다.
이경석은 그저 곤궁에 빠진 인조를 위해 비문을 써준 죄 밖에 없었지만, 평생토록 그 낙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삼전도비를 그대로 땅에 묻었지만, 60년대 홍수로 인해 삼전도비가 드러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경석으로서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걸 원망해야지….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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