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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 3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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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경석과 장유의 비문(碑文)을 심양으로 보낸 인조, 그러나 당시 조선과 청의 분위기는 싸아 하기만 했으니,
 
“이경석이든 장유든…채택되면 그걸로 인생 쫑 쳤다고 봐야지?”
 
“당근이지. 청나라 황제의 공덕을 칭송한다고?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야? 걸리면 그걸로 두고두고 욕 먹을 거야. 아니 가문 전체가 역사에 기록돼서 개 쓰레기 취급 받을 거야. 이거 참, 인생 고달프게 됐어.”
 
“그러게 뭐 먹을 게 있다고, 비문 같은 걸 써주나?”
 
“왕이 옆구리 쑤셨대. 아님 지가 써야 할 판이니…. 옆구리 안 쑤시게 생겼어?”
 
“어쨌든 불쌍한 놈들이네. 지들 잘못도 아닌데, 그러게 튀면 안 된다니까. 적당히, 적당히 눈치 보면서 착 엎드려 있어야지. 괜히 튀었다간 이런 꼴 당한다니까.”
 
“이경전이 봐봐. 비문(碑文) 써내라니까, 창작의 고통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글 안 나온다고 삐댔잖아. 걔가 원래 잔머리 하나는 타고 났잖아?”
 
“그러게… 지금 덜컥 청나라 황제 공덕비 같은 거 써줬다가는 인생 종 친다니까…쯧쯧.”
 
당시 조선 조정의 분위기는 이랬다.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 하지만,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말하는 유학자로서, 사대부로서 청나라 오랑캐의 황제를 위한 공덕비를 쓴다는 것…그건 유학자로서의 인생을 포기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조선이 비문(碑文) 작성 문제 때문에 폭풍전야의 스산함을 연출하고 있을 그때, 청나라 조정에서는 조선에서 보내온 두 개의 비문(碑文) 중 어느걸 택해야할지 격론이 오가고 있었으니,
 
“이 참에 조선애들 기를 팍 죽여야 한다 해!”
 
“맞다 해!”
 
“그런데, 너네 한자 아나 해?”
 
“…천자문은 대충 뗐다 해.”
 
“그걸로 어케 문자를 안다 할 수 있나 해? 더구나 이건 우리 황제폐하를 위한 공덕비 비문이라 해!”
 
그랬다. 당시 청나라 조정에서는 조선의 비문 두 개 중 어느 걸 택해야 할지 그걸 고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범문정(●文程)이었다. 명나라 학사 출신인 범문정은 곧 ‘비문 심사 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면밀히 이경석과 장유의 글을 비교하게 되는데…
 
“음…장유의 글은 비문으로 쓰기 어렵다 해! 오탈자도 많고, 주어와 술어 구분이 모호하다 해. 이놈시키는 쓰기 싫은 거 억지로 쓴 거 같다 해.”
 
“이경석의 글은 어떤가 해?”
 
“장유보다는 낫다 해. 그런데 이놈도 글을 너무 짧게 썼다 해. 짧은글이 좋은 글이긴 해도 생략한 게 너무 많다 해. 이경석의 글을 좀 더 수정해서 비문으로 쓰는 게 나을거 같다 해.”
 
범문정의 심사가 나오자. 청나라에서는 이 심사평을 그대로 조선에게 보내게 되는데…
 
“너 네들이 보낸 비문 중에서 이경석의 글이 뽑혔다 해.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라 해! 이경석의 글이 장유 글 보다 쫌 더 좋기는 하지만, 너무 짧다 해! 대청제국의 황제폐하의 공덕을 그리기엔 너무 짧다 해! 그러니까 이경석이 보고, 글을 좀 더 잡아 늘려서 대청황제폐하의 위업을 빛낼 수 있게 자세히 쓰라고 시켜라 해!”
 
장유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말이었지만, 이경석으로서는 인생 쫑 치는 말이었다.
 
“야야, 경석아…어쩌냐? 네 팔자가 드러운 걸…차라리 사표 내고 낙향하는게 낫지 않겠냐?”
 
“야, 어차피 누가 쓰긴 써야 할 건데, 어쩌냐? 네가 총대 메야지….”
이런 위로와 충고가 오가는 사이 이경석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타고난 글재주를 원망해야 하는 것일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급해진 것은 인조였다. 만약 지금 이경석이 글을 못쓴다 그랬다간, 병자호란 시즌2가 다시 일어날 상황.
 
“경석아, 거시기…네가 좀 거시기 해야 겄다.”
 
“…….”
 
“내가 나중에 힘 키워서 저 빌어먹을 떼놈 오랑캐 놈들을 쓸어버려야겠는데, 그때까지 대충 시간을 끌어야 하지 않겠냐? 그럴라면 네가 지금 저놈들 비위를 살살 맞춰줄 글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안 그래? 내 가오를 봐서 함 써 줘라. 응?”
 
“…….”
 
“그게…또 네 맘 다 알거든, 분명 뒤에서 뒷담화 깔 놈들이 있을텐데…그런 호로새끼들은 내가 찾아서 다 쪼사버릴테니까. 너는 아무 걱정 말고…솔직히 뭐 지금은 방법이 없잖냐? 내 체면 한번만 살려줘라.”
 
인조의 애원에 이경석은 흔들리게 되고, 결국 비문 수정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고쳐진 비문은 청나라의 OK사인을 받고, 그대로 비문제작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과연 삼전도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일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작문사극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커밍 쑨!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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