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아니 왜 지들이 지어서 보내면 될 것을 뭐 그렇게 복잡하게….”
“복잡한 게 아니라, 완전히 우릴 엿 먹이겠다는 거죠 뭐. 어차피 머리 피나게 찧어 된게 네들 아니냐? 이참에 충성맹세 한번 하고, 박박기어라….”
“그래서? 네가 비문 짓겠다고?”
“아니, 거시기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에 약해서리….”
“야야, 네들 왜 그래? 지금 당장 비문 지어 내라잖아!”
인조의 말에 대신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춘추대의(春秋大義) 이 한마디를 내세워 광해군을 몰아냈고, 이 춘추대의 덕분에 청나라와 두 번의 전쟁을 치루지 않았던가? 삼학사처럼 절개를 지킬 순 없다 해도 최소한 흉내는 내야 하는 것이 당시 상황이었는데, 만약 이 상황에서 청나라를 칭송하는 비문을 짓는다면, 그야말로 두고두고 욕을 먹을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살아생전에 욕먹는 걸로 끝난다면 다행일 것이다.
조선이 끝나는 날까지, 아니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 이름은 계속 전해질 것이 아니던가? 후세의 평가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유학자들·사대부들에게는 그야말로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었다.
“거시기, 청나라 황제를 위한 공덕비인데, 적어도 급은 좀 되야죠?”
“그렇죠? 급도 급이지만…급에 걸 맞는 작문실력도 있어야 하고….”
“학식도 있어야 겠죠.”
“그래서 어쩌라고? 대안을 놓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두루뭉실 넘어갈 생각 말고 대안을 말해 대안을!”
“거시기, 이정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문관(藝文館 :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고, 실록편찬을 위한 사초를 작성하는 기관) 대제학(종2품)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요?”
“이색희가 그걸 누가 모르는줄 알아? 지금 대제학 자리가 공석이잖아!”
“그럼 뭐…대제학을 임명하면 되지 않겠슴까?”
“내가 미친척하고 한번 물어볼게. 야, 네들 중에 예문관 대제학 자리 지금 앉고싶은 놈 있냐? 있음 그냥 그 자리에 앉혀줄게, 인사청문회 같은 거 없거덩? 앉으면 내가 그 자리에서 특별 보너스 500% 질러줄께! 야, 누구 예문관 대제학 할 사람?”
“…….”
아무도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어떤 미친놈이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그 자리에 앉으려 할까?
“이색희들! 이럴 때만 잔머리 굴려요. 어휴…이것들을 그냥….”
그 누구도 비문을 짓겠다고 나서는 놈들이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이런 것일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급해 진건 인조였다. 잘못하다간 자기가 직접 비문(碑文)을 지어야 할 판, 이대로 가다간 머리를 9번 찧은 것도 모자라 ‘청나라 황제폐하 만세’라고 비문까지 써바친 임금이 될 판이었다.
“이색희들…. 야! 거기 이경석…. 그래 너 말야 새꺄! 그리고 그 앞에 옆에…그래 장유, 그리고 그 옆에 같이 앉아 있는 이경전, 조희일…네들 당장 비문 적어와!”
“예? 그러는 게….”
“뭘 그러는 게야? 왕이 까라면 깔 것이지. 네들 모여서 같이 써올 생각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써와! 알았어? 이것들이…왜 대답이 없어?”
“예…예…. 알겠습니다.”
이리하여 인조는 4명에게 비문(碑文)을 떠넘기고, 한숨을 돌리는데…문제는 이들 조차도 떨떠름해 비문을 쓰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경전 같은 경우엔 뭉기적 거리며 끝까지 비문을 내지 않았을까? 어쨌든 임금의 독촉을 받던 4명 중 3명은 다 나흘 안에 완성된 비문을 만들어가지고 오는데…
“이경석이…자식 귀여운데? 이틀 만에 만들어 오고 말야. 자유 자식도 사흘 만에 만들어 오고…조희일 이눔 자식은 이런 거도 지각해야 하냐?”
어쨌든 인조는 3장의 비문(碑文)을 얻게 되는데…
“휴…, 어쨌든 3배수는 확보한 거 아냐? 일단 이것들 중에서 대충 괜찮은 걸로 두 개 정도 추렴해서 보내자.”
이리하여 인조는 조희일의 글을 떨어뜨리고, 이경석과 장유의 글을 뽑아 사신단에게 보내준다. 사신단이 오케이 사인을 하자, 인조는 이 글을 심양으로 보내는데…
“떼놈들의 시키가 뭘 알겠어? 일단은 아는 시늉이나 하다가, 대충 만드는 거 흉내나 내지 뭐.”
이런 안일한 생각의 인조…그러나 뜻밖의 다크호스가 심양에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초특급 대하 울트라 작문 사극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
자료출처 : 스포츠칸
174. 나라에서 흰옷을 금지한 사연 下 (0) | 2007.02.15 |
---|---|
175.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 1 (0) | 2007.02.15 |
177.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 3 (0) | 2007.02.15 |
178.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 4 (0) | 2007.02.15 |
179. 삼족을 멸하라! 그런데...삼족(三族)이 누구야? 上 (0) | 200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