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14년, 1636년 12월 2일…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조선과 청의 평화가 깨졌다. 있어서는 안 될 쿠데타,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작은 마음(小心)의 왕 인조가 드디어 청과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뭐, 그 전에 정묘호란이라고 한바탕 전쟁을 치뤘던 기억이 있기에 색다를 것이야 없었지만, 이번에는 왕이 직접 청 황제에게 나아가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만주풍습으로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이때 인조가 머리를 땅에 찧어 피를 흘렸다는 소문이 퍼졌다)를 하면서 형제간의 국가 외교 형태가, 군신간의 형태로 뒤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치욕’이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말이다. 이 ‘삼전도의 치욕’ 이후에 있었던 또 다른 치욕이 있었으니…오늘의 주제는 삼전도의 치욕 3년 뒤에 있었던 삼전도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저…전하! 크…큰일이 났사옵니다.”
“이런 된장, 왜 엽기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왕들은 맨날 큰일만 당하냐? 가끔은 작은 일도 당하고, 대충 넘어가고…그런 건 왜 없는 거야!”
“그…그것이 작가가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미담이나, 좋은 이야기는 쏙 빼버리고 온갖 추잡한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 거라서….”
“아 거기까지…. 이번엔 도대체 무슨 큰일인데? 일단 들어나 보자.”
“그것이…삼전도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라는….”
“거시기 ,좋게 포장하지 말고, 공문 날아온 거 그대로 말해봐.”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라는 걸 만들어 달랍니다.”
“대청황제공덕비?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아직 대가리 찧느라 까진 내 이마에 딱지도 안졌다!”
“그럼 어쩔까요? 거절할까요?”
인조 15년 3월,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겪은 지 체 2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터져 나온 대청황제공덕비 공사 명령서, 이 팩스 한 장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혀 지는데….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보나…. 전하! 저번에는 우리가 가드 올리는 걸 깜박해서 진 겁니다! 이번에 붙으면 한번 해볼만 합니다! 이참에 엉겨보죠?”
“워~워~. 지난 겨울에 그렇게 당하고도 몰라? 저번에는 우리 전하가 머리 찧는 걸로 끝났지만, 이번에 개기면 아예 발바닥을 핥으라고 할지도 몰라. 청나라 황제 그 시키 발 잘 안씻어서 무좀 있다고 하던데….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너 이색희, 뭐 무좀 걸린 발? 저걸 그냥! 확! 저런게 신하라고….”
“전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결단은 무슨 결단…까라면 까야지. 이번에 잘못 엉겼다가는 아예 기둥뿌리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공덕비든 공덕역이든, 만들어 달라는 거 다 만들어 줘!”
“전하! 그런데 재원이…난리 두 번 겪으니까 아예 나라가 절딴이 난지라….”
“이색희! 까라면 깔 것이지 뭔 말이 그리 많어?”
이리하여 인조는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건설을 위한 테스크 포스팀’을 짜게 되는데, 그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공사 주체는 공조에서 관장하기로 하고, 공조를 지원해 주기 위해 병조와 호조가 붙게 되었다. 육조의 반…한마디로 행정부의 절반이 이 공덕비 제작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야야, 청나라 놈들 삐져서 또 쳐들어온다 소리 듣기 싫거든? 하려면 제대로 해 알았어? 어이 공조판서, 괜히 비자금 만들겠다고 날림공사 했다가 몽땅 독박 쓰지 말고 이번에는 네가 직접 관장해라 알았지? 괜히 하청에 재하청 주고 그랬다간 봐라.”
인조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편달(?) 덕분에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비단(碑壇)은 공덕비 세우라는 말 나온 지 7개월 만인 그해 11월 3일 완공되기에 이른다.
“쉬파, 이제 청나라 애들한테 검수만 받으면 되지? 이거 하나 만드는데 뭐가 이렇게 힘드냐?”
그랬다. 이 당시 조선의 상황은 이런 비단(碑壇) 하나 만드는데에도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난리를 두 번이나 겪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비단이 완성된 얼마 뒤…청나라에서 비단의 부실검사 여부를 검수하기위해 사신이 파견되었으니, 바로 청나라 사신 마푸타의 등장이었다.
“비단 맘에 든다해. 거봐라해. 시키면 제깍제깍 잘하는 놈들이 뭐 먹을 게 있다고 개겼나해? 너네 개기지 않았으면, 우리 안쳐들어 왔다해. 앞으로 네들 정신 차리고, 말 잘들어야 한다해.”
마푸타는 비단의 모습에 크게 만족하게 된다. 조선 정부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순간이었는데…이 안도의 한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에 그런데 말이다 해. 원래 비문(碑文)은 우리가 지어서 내려 보내야 하는데 말이다해. 일정상 좀 번거로울 거 같다 해. 걍 네들이 지어서 올리라 해!”
청나라 사신이 던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한마디! 비문의 내용을 조선 측에서 만들어 올리라니…이 한마디에 조선의 조정은 발칵 뒤집혀졌는데…. 어째서 조선 정부는 발칵 뒤집혀 졌을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작문 사극 ‘반성문을 누가 쓸 것이냐?’는 오늘도 이렇게 뭐 싸다만 느낌으로 끝을 내는데…그럼 다음 회에서 보자. 커밍 쑨…
자료출처 : 스포츠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