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음식 가운데 수분함유율이 파격적으로 높은 것이 우리 한국 음식임은 알려진 상식이다.
따라서 국물음식이 우리나라처럼 발달한 나라도 없다. 콩나물국-북어국-쑥국-떡국-시래기국-고기국-무국-토장국-토란국-근대국-개장국-복국-가리국-재첩구-만두국에,곰탕-설렁탕-갈비탕-추어탕-대구탕-꼬리탕-족탕-도가니탕-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임원십육지> 나 <산림경제> 등 문헌에 나오는 국-탕류만도 58종에 이르고 있다.
왜 이렇게 탕문화가 발달했으며 탕없이 밥을 먹을 수 없게끔까지 됐을까. 여러가지 이설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빈곤설이다. 어려울 때 많은 식구가 적은 분량의 식품으로 생존해 내려면 음식의 질보다 양이 우선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물을 듬뿍 부어 탕을 만들어 두루 나누어 먹을 수 밖에 없다. 또 국물음식의 특성은 혼자서 저만 먹는 것이 아니라 동일공동체의 여러사람이 평등하게 나누어 먹는다는데 있다. 곧 공동운명체로서 동질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국물음식이 발달했다는 설도 있다.
다른 한 이유로 음식을 가장 맛있게 하고 또 그맛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국물상태라는 것은 알려진 상식이다. 다만 서양사람이나 중동사람들의 음식에서 물기가 증발하고 없는 것은 그들이 옮겨다니며 사는 이동민족으로 물기있는 음식이 운반에 부적합하고 부패가 쉽기 때문이다.
탕문화에는 이처럼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만약 우리 한민족이 탕민족이 아니었던들 임진왜란에 패배하지 않았을것이라는 가설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장졸들이 국없이 밥을 못먹기에 한데 모이게 되고 병력이 모이면 전략상 취약점을 드러낸 것이 되며 왜장들이 이 조선군의 취약점을 십분 활용, 기습을 감행했음이 저들 기록에 나온 것을 본일이 있다.
그렇다면 병사 각자가 휴대해서 뜨거운 국물만 부으면 되는 즉석탕은 군량으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쟁터나 야외에서 먹는 탕국이 아닌 바에야 굳이 국을 인스턴트화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 간다. 음식맛은 엄마 손맛깔이라는 말도 있듯이 국물 하나 맛있게 끓이는데 갖은 정성이 다 가는 법이다.
전통요리 문헌에 보면 콩나물하나 다듬는데도 다음과 같은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1) 시루에서 뽑아 시중(=지금 시간으로 2시간)안에 다듬어야만 제맛이 난다. (2) 반드시 응달에서 다듬어야 한다. (3) 국물을 시원하게 하려거든 콩나물 꼭지를 반감하면 된다. (4) 물과 함께 끓이지 말고 물을 끓인 다음 콩나물을 넣어야 덜 비리다. (5) 매 끓여 우러난 다음 간을 보아야지 미리 간을 보면 제맛이 안난다.
지금 라면처럼 물만 부으면 국이 되는 각종 즉석탕이 개발되어 시판될 것이라던데 이상과 같은 정성들이 수용될 리가 만무한 것이다. 엄마손맛깔이 증발된,그래서 미치양산이 우려되는 즉석시대의 그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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