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를 나무뿌리로 삼고 뻗어나간 가지를 중시조 삼아 자신의 혈맥(血脈)을 도표로 볼수 있게 했다하여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 비단 족보뿐 아니라 영국의 일부지방에서는 각기 가문의 종가(宗家)에 실제로 조상나무가 자라고 있어 분가(分家)하게 되면 이 조상나무의 가지를 꺾어다가 심음으로써 혈통(血統)을 나무로 승계시키는 전통도 있다한다. 시인 테니슨이 살았던 집에 9대째의 조상나무가 있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또 미국에 이민(離民)할 때 이 조상나무의 묘목을 들고 간 사람이 적지않았다고도 들었다.
"한해의 계획은 곡식심는 것에 더한 것이 없고 10년의 계획은 나무 심는 것에 더한 것이 없으면 평생계획에는 사람 심는 것에 더한 것이 없다"는 말은 실용주의 사상을 편 <관자>에 나온다.
이처럼 미래지향적인 식목으로 우리나라의 '내 나무' 이상 철학적인 나무도 없을 것이다. 그해나 그 전해에 아들딸을 낳았으면 지력(地力)이 동(動)하기 시작한다는 청명, 한식날에 그 아들딸 몫으로 나무를 심게 마련인데 그것이 '내 나무'다. 딸일 경우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심는데 그 딸이 자라 시집가게되면 그 오동나무를 잘라 농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아들이면 선산에 그 아들몫으로 느티나무나 잣나무를 심는데 그 나무의 주인공이 늙어 죽었을 때 그 내 나무를 잘라 관목(棺木)으로 삼았느니 식목 철학으로 더 이상 심오할 수가 없다.
군자의 나라라서인지 '효자의 나무'도 있었다. 팔도에 효자가 탄생되면 경복궁에서 자라는 앵두나무 묘목을 하사(下賜)하여 그 집에 심게 했는데. 이 하사앵두는 가문대대로 계승되는 영광의 나무가 아닐 수 없었다. 경복궁 앵두가 효도나무가 된 연유는 이렇다. 조선조 5대 임금인 문종의 효심은 대단했다. 아바마마인 세종대왕께서 유난히 앵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궁뜰 여기저기에 손수 앵두를 심어 손수따다가 씻어서 갖다 드리곤 했던 것이다.
조상나무, 내 나무, 효자나무 말고 고장나무 라는 것도 있었다. 그 고을의 기후나 풍토 지질에 맞는 나무로서 10년짜리 고장나무 한그루 베면 10그루의 고장나무를 심게끔 향약(鄕約)으로 정하고 있다. 청명 한식철에 아이들 나이 수만큼 고장나무를 심으면 무병(無病)하다는 민속도 있었으니 나무를 신앙(信仰)차원에서까지 심지않을 수 없게 해놓고 있다.
<용재총화>라는 조선조초의 문헌에 고장나무가 적혀있는데 배나무는 정선, 대추나무는 영춘, 밤나무는 밀양, 잣나무는 순흥, 감나무는 함양, 동백은 구례로 돼있다. 이같은 상실하고 없는 아름다운 식목 문화를 되살려 나무심는데 철학과 낭만을 되찾아 누렸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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