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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왕진의 지팡이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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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일전에 노환으로 죽은 중국정부 부주석 왕진이 남긴 살림이 책 1천여 권과 지팡이 하나 뿐이었다는 현지 특파원의 보도가 있었다.

 

그 지팡이 하나가 지금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 공직자들의 과람한 호사와 비양심에 교감되어 별나게 여운을 끈다. 그것은 그가 노구를 부축하는 지팡이 뿐 아니라,평생 나라안의 바닥민심을 살피러 다닐때 짚고 다녔던 민장이며 자손들이 밥그릇가에 밥풀을 남기면 그것을 다 떼어먹을 때까지 종아리를 쳤다던 훈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왕진의 지팡이에 연관되어 중종 때 선비 김정국의 지팡이 생각이 난다. 늘그막에 치부만 하려드는 한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그의 재산을 이렇게 공개하고 있다. "두 칸집에 두 이랑 전답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두 벌이 있었으나, 신변에 여벌 옷이 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은 밥이 있었소. 그리고 없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책 한 시렁, 거문고 한벌, 햇볕 쬘 쪽마루 하나, 그리고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가 고작이오"했다.
 
왕진보다 거문고 하나가 더 있는 셈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론의 지팡이는 불모의 땅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지팡이요, 로마 집정관의 지팡이는 그것에 손을 대는 것으로 노예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던 자유의 지팡이이며, 탕호이저의 지팡이는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는 정의의 지팡이였다. 영국 하원 의장의 상징인 지팡이는 양떼 모는 목자의 지팡이에서 비롯되었고 .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신사'에 보면,푸 른잎이 달린 지팡이를 바치는 것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고, 잎이 달린 지팡이로 자신의 종아리나 등짝을 때리면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싹튼다는 관습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유럽에 있어서 지팡이는 사랑을 부르는 몽둥이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비해 한국의 지팡이는 속세나 부귀를 떠난 정신세계의 대명사가 돼 있었다. 조선조초의 정승 박순은 만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여생을 보냈는데,지팡이 짚고 산속을 거닐면, 그 지팡이 소리를 알아듣고 날아든 뭇새들과 다람쥐 등속들과 종일토록 놀고오곤 했다 한다. 지팡이는 짐승의 마음과도 통하는 티없이 맑은 정신적 매체였던 것이다. 공을 남기고 퇴임하는 대관에게는 궤장이라하여 기대고 앉는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는데, 안석은 그 대관의 공을, 지팡이는 그 대관의 청백함을 상징했다고 한다. 이렇게 지팡이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기에 돌아기신 후에도 제청에 영혼과 함께 모시고 자손대대로 물려 그릇된 일을 하는 자손이 생기면 이 지팡이로 때려 훈계를 했는데, 이를 조장을 맞는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진이 남긴 지팡이가 자꾸만 부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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