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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덕불감증(道德不感症)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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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대원군이 되기 이전의 이하응이 묵화(墨畵)를 쳐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을 때 일이다.

 

안동김씨 세도의 중심인물 김병국에게 난 한폭을 쳐 바쳤더니 "어찌 이 난에는 생기가 없소"하고 못마땅해 했다. 이에 당황한 이하응은 "오래 쓰지않던 벼루를 썼더니만-"하고 벼루탓을 하고 있다.
 
이것이 연유가 되어 운현궁 벼루 탓 하면 뭣인가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하는 것을 빗대는 속담이 되고 있다. 그림이 잘못되면 벼루탓을 하듯이 글이 잘못되면 필묵 탓을 하고 떡이 잘 못되면 안반탓을 한다. 잘 살면 조상 탓이요 못살면 산소탓이다. 길은 갈 탓이요 말은 할 탓이다. 공부 못하면 가난탓이요 출세 못하면 연줄없는 탓이다. 소도둑에게도 탓할거리는 있다. 길바닥에 새끼줄이 떨어져 있어 주워들고 왔더니 그 끝에 소 한마리가 따라 들어오더라는-.
 
미국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잘 쓰는 말로 미혼모의 변명 이란게 있다. 변명해 보았댔자 통하지 않는 변명이 미혼모의 변명인 것이다. 한데 우리 미혼모의 변명은 전혀 의미가 없지 않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지 않던가. 핑계없는 무덤없고, 탓없는 허물이란 우리나라에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일지라도 조실부모하고 계모의 학대를 못이겨-운운하면 우리 한국사람 눈시울을 붉힌다. 운전기사가 졸면서 차를 몰다가 대량살상을 하고서 어린 자식 입원비 마련코자 밤샘을 했더니-운운하면 한국사람 혀를 딱딱 차며 용서를 한다.
 
탓도 잘하지만 탓에 너그러운 탓의 왕국이다. 과오나 허물을 남의 탓으로 돌려 자신을 구제하려는 의식구조가 왜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체질화되었을까. 흔히들 서양사람들은 죄의식이 발달하고 동양사람들은 수치의식이 발달했다고 한다. 죄의식은 스스로의 양심과 절대자인 신과의 고독한 대결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잘못이 전가되지도 않고 전가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수치의식은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소외받지 않으려 하는데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잘못을 전가하려 들고 전가하는데 능수능란해진 것이다.
 
이번 재산공개에서 우리나라 지도층이라는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무슨 핑계와 탓으로 허물을 피하려는데 예외가 없었다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 측면에서 필연하다. 솔직하게 허물을 자인하고 새 출발하기를 바랐던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도덕불감증이라는 말로 지탄을 했다. 바로 그것이 새대통령이 치유하겠다고 나선 중증의 한국병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핑계나 탓을 하는 공직자를 볼 수 없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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