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뜰새없이 써먹기만 해온 간부 사원들을 지적(知的)으로는 해골처럼 깡마르고 정서적(情緖的)으로는 건포도처럼 메말라 있게 마련이다.
이 지적-정서적 소말리아인들을 일정기간 동한 휴양지에 보내 쉬게하면서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함으로써 지력을 재충전하고 정서를 기르는 독서휴가제가 성행하고 있다 한다. 이전에 없던 현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여왕 치하에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으로 불렸던 독서휴가제가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장급 이상의 정책을 결정하는 고관들을 3년에 한번꼴로 한달 남짓의 유급휴가를 보낸다. 그 동안 주로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을 선택 정독(精讀)케 하고 독후감을 써내도록 의무화 한다. 많은 문학작품 가운데 법(法)이나 규범(規範)으로 다스려지지 않은 인간상황이 가장 절실하게 묘사된 것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요, 위정자로 하여금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데 십상이기 때문이라 한다.
따지고 보면 독서휴가는 우리나라가 보다 선진국이었다. 세종대왕이 어진 학자들을 모아 학문에 전념케 하는 집현전(集賢展)을 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젊고 총명하며 유망한 자를 다시 뽑아 일정기간 동안 한양 인근 절간에 보내 독서를 시켰던 것이다. 이를 상사독서(賞賜讀書) 또는 사가독서(私家讀書)라 했다. 절에 가있는 동안 임금님은 특별히 음식을 융숭하게 내리고 손수 덮었던 이불을 내리기도해 상사독서는 일생의 영광일뿐 아니라 족보에 기록될만한 가문의 영광이기도 했던 것이다.
세종에게 1차로 선발되어 삼각산의 진관사로 상사독서하게 된 젊은 선비들을 들어 보면 박팽년, 신숙주, 이개, 성삼문, 하위지, 이석형 등 6명이었다. 그중 신숙주와 이석형을 제외한 모두가 사육신(死六臣)임을 감안할 때 바로 불의에 대한 의거가 이 상사독서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상사독서를 하면서 연작(連作)으로 지어 남긴 삼각산시는 한국적 기개와 풍류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그후에 성종이 상사독서제도를 부활, 세검정 장의사를 이용하다가 용산에 너른 폐사(廢寺) 하나를 수리하여 독서당(讀書堂)이라는 현판을 걸고 시한부 독서휴가의 전용공간을 만든 것이다. 독서당은 그후 한강변의 두모포로 옮겨 지어 대대로 독서휴가 전당으로 활용되어 내렸던 것이다. 성종은 궁중에 독서방을 두어 유망한 젊은이를 기숙시켜 책을 읽히기도 했는데, 밤만 되면 이 선택받은 독서생들을 유혹하려는 궁녀들의 원색적인 수작이 야사(野史)에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주요 기업체에서 시도되는 독서휴가제는 5백년만의 부활이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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