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놈은 되와서 되돌아 가는데/왜놈은 왜 와서 왜 안돌아가나 하는 절명시(絶命詩)를 써남기고 의거의 현장에 나온 윤봉길 의사는 일본 국가가 끝나기 직전 거사(擧事)할 작심을 하고 있었다.
일본국가의 끝에서 두번째 구절인 조약돌이 바위가 되기까지- 를 부르는 동안 윤 의사가 던진 폭약이 단상 복판에 터진 것이다. 이로써 상해방면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백천의칙) 대장이 폭사하고 함대사령관 노무라의 눈알이 빠졌으며 우에다 9사단장과 시게마쓰 주일공사의 다리 하나씩이 부러졌던 것이다.
당시 신문에 보면 시라카와 대장은 비틀거리며 안면에 흐르는 피를 오른손으로 닦으면서 식단을 내려오고자 허둥거렸다 했다. 그후 상보된 바로는 시라카와는 왼쪽 가슴과 왼팔 복부 안면 등에도합 30군데 파편성을 입고 입원 치료중 27일만에 죽고 있다.
지금 새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되뇌는 뜻은 바로 어제였던 의거날이 망각 속에 지니버린 것이 섭섭해서가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적 구심점인 야스쿠니신자(정국신사)의 개방된 유물관에 범연히보고 지나칠 수 없는 유물 한 점이 전시돼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바로 윤봉길의사의 의거 때 폭사당한 시라카와 대장이 당시 입었던 찢기고 구멍났지만 피묻은 Y셔츠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그 피묻은 Y셔츠를 일본의 나이 어린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노리는 것이 뭣이냐 하는 점이다. 왜 외국까지 나아가 폭탄세례를 당해야만 했느냐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불순한 조선사람에 의해 저토록 처절한 죽음을 당했다는 단세포(單細胞)적인 분노만을 그 피묻은 Y셔츠로 촉발시킬 따름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피묻은 Y셔츠가 유발시켜 왔고 또 유발시켜 나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적개심의 분량을 생각해 보면 아찔해지기만 한다.
수난문화재(受難文化財)라는 게 있다. 이민족으로부터 수난 받았던 현장이나 사물을 보존함으로써 민족의 과거를 잊지않고 민족의 힘을 구심시키며 결집시키는 매체가 수난문화재다. 이를테면 윤봉길 의사가 고문당하면서 찢기고 피묻은 Y셔츠가 보존돼 있다면 그건 수난문화재다. 예루살렘에 가면 나치스가 유태인 수용소에서 사람기름을 짜 만든 인지(人脂)비누를 전시하고 있는데 그것도 수난문화재다.
하지만 나이 어린 일본국민들에게는 수난문화재인양 전시되어 적개심을 고양시키고 있는 이 피묻은 Y셔츠는 가난(加難)문화재이지 수난문화재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인류의 양식에 어긋난 불의(不義)의 행위는 의당 이같은 응수(應受)를 받은다는 설명이 붙었어야 했을 피묻은 Y서츠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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