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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김치가 싫은 아이들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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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농부가(農夫歌)마다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다 하고, 네가 무슨 반달이야 초생달이 반달이지 하는 대목이 나온다.

 

농부가에 반달이 끼이게 된 연유에 대해 이런 설이 있다. 한말 헌종 때 창덕궁에서 치맛바람을 날렸던 반달 이라는 이름의 궁기(宮妓)가 있었다. 창덕궁 안 건양재 동편에 정자를 지어놓고 날려대는 치맛바람은 나라의 재정이며 정승 판서의 인사에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녀는 당시 청나라 단골 사신의 연인으로서 사대(事大)파워를 후광으로 업고 있었기에 임금도 어찌할 수 없었으며 그저 노래 속에서만 원망할 수 밖에 없었음직 하다.
 
그 후부터 농부가의 반달은 청나라 사신의 연인이름에서 비약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사는 외난(外難)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다. 곧 반달만큼 남은 논배미는 외세나 외국문화에 침식(侵蝕)당한 우리 한국의 주체성(主體性)이나 동일성(同一性)의 처량한 몰골인 것이다. 그 반달의 현대적 표현으로 '바나나'를 들 수 있다. 겉은 노란 황색 인종이면서 속은 하얀 백색 인종인 것처럼 행세하며 치장하는 사이비(似異非) 인종이 바나나인 것이다.
 
바나나 인간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음을 본다. 언젠가 냉면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 다닐만한 딸을 데리고 옆자리에 앉았던 40대의 어머니가 젓가락 대신 포크를 갖다 달라고 하면서 자기 딸이 젓가락질 못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은 것이다. 한국 사람이 쓰는 젓가락은 서양 사람이 쓰는 포크보다 열등(劣等)하다는 막연한 바나나적 사고(思考)에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양식당에서 빵이냐 밥이냐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밥을 달라고 하면 웨이터는 "라이스 말이지요" 하고 반문(反問)하기 일쑤인데, 밥보다 라이스가 고급이라는 역시 바나나적 사고에서 만이 가능한 반문인 것이다.
 
언젠가 공개 석상에서 젊은 어머니가 자기 아이들은 김치를 먹기는커녕 냄새나는 것만으로도 콧주름을 잡으면서, 피자는 열두가지 다른 종류를 골라 먹는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김치는 먹이지 않고 피자만을 먹여놓고 마치 천성(天性)이 선진국에서나 살 수 있는 성골(聖骨)임을 과시하는 바나나 어머니들이다.
 
어느 한 보험회사에서 조사한바로 국민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돈까스-피자순이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김치-채소류순이라는 결과를 보고 우리 가정을 파먹어들고 있는 겉 노랗고 속 흰 바나나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훤히 보는 것만 같다.
 
조선조 초기 학자 서거정의 '모과송'이 생각난다. "겉도 노랗고 속도 노란 것이 꼴도 제멋대로고 먹지도 못한다. 한데 향기만은 뛰어나 겉이 시들어도 향기는 시들지 않고, 코로만 맡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도 맡아지느니 뭇인생이 모과이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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