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할미꽃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57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설총이 여색(女色)을 좋아하는 신문왕을 위해 지은 <화왕계(花王戒)>를 기억들 할 것이다.

 

화왕인 목단(木丹)은 미녀인 장미(薔薇)의 아양과 교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날 경주 큰 길가에 피어있던 선비 백두옹의 방문을 받는다. 허술한 베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백발에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지탱하고서 찾아든 백두옹은 바른 말로 충간(忠諫)을 하는데도 장미에 빠져 돌아보지도 않은지라 "총명하고 의리를 지키는 임금인줄 알았더니-" 하고 등을 돌리니 그 때야 깨닫는다는 줄거리다.
 
바로 그 백두옹이 봄이면 한국 산야의 양지에 피어나는 할미꽃이다. 남달리 검붉은 단심(丹心)을 품었으면서도 겉모양은 백발(白髮)을 날리고 허리를 굽힌채 촌로(村老)처럼 일신(一身)을 드러내지 않는 할미꽃은 선비의 기상을 지녔다 하여 <화왕계>에서 처럼 선비를 상징하는 시어(詩語)로 정착하고 있다. 또 고개숙여 검붉게 타는 속을 숨기고 있어서인지 할미꽃은 한(恨)의 꽃이기도 하다.
 
한 할머니가 얼굴은 예쁘나 심사가 고약한 큰 손녀와 얼굴은 밉지만 심사는 곱기 이를데 없는 작은 손녀와 같이 살았다. 이웃에 사는 부자집에 시집을 간 큰 손녀가 할머니를 모시는데 굶기고 구박을 일삼자 산너머 가난한 집으로 시집간 작은 손녀를 찾아갔다가 굶주려 기진맥진한 할머니는 고개너머 양지바른 쪽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작은 손녀가 묻어주자 무덤가에서 꽃이 피어났기에 할머니의 원한이 서렸다 하여 할미꽃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저 무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할미꽃이 그리 많이 피었나"하는 남도 아리랑은 한국인의 심정 속에서 할미꽃의 좌표(座標)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탑(斜塔)이 있는 피사에만 이 할미꽃이 피는데, 전설로는 십자군에 참여했던 피사의 움베르토 사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힌 현장의 흙을 옮겨다 놓은 땅에서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곧 순교의 꽃이다. 할미꽃물로 부활절에 달걀을 염색한다 해서 부활절의 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할미꽃의 꽃말 역시 종교적이다. '당신은 주기만하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는 않는다.'
 
꽃과 뿌리가 독을 품고 있어 소나 염소가 해치지 못하고 나물캐는 아이들도 꺾지 못하게 했다. 뿌리를 찧어 그 즙으로 벌레를 죽이는 살충제로는 쓰였을망정 꽃이 곱다 하여 관상용(觀賞用)으로 파 옮기면 반드시 죽고만다. 인간이나 문명의 오염(汚染)을 싫어하는 고집센 들꽃이었다.
 
그 할미꽃이 그 억센 고집을 꺾었다. 원예인 10여명이 10여년간 연구하여 집뜰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 꽃을 키울 수 있게 했다 한다. 들꽃을 집뜰에서 완상(玩賞)할 수 있게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보장시켜 주어도 좋았음직한 그 꽃의 섭리(攝理)나 고집(固執)이나 심지(心地)를 꺾은 것같아 개운찮은 여운(餘韻)도 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