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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한국(韓國) 호랑이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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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유럽에 있어 호랑이 이미지는 희랍시대 이래 별 볼일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나오는 호랑이는 무자비-잔혹-교활-음흉의 상징인데 예외가 없다. 유럽의 현대시에 있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나 이성을 상실한 격정을 우리 속의 호랑이로 곧잘 비유한다.
 
불경(佛經) 속의 호랑이도 매한가지다. <금광명경>에 보면 새끼를 낳고 굶주린 암호랑이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왕자를 뼈와 머리카락만 남겨놓고 무자비하게 잡아 먹고 있다. 한시(漢詩)에서도 호랑이의 위상은 낮다. 그 유명한 한유의 <맹호행>에서 호랑이는 아침에 성내 제 새끼를 잡아먹고 저녁에 성내 제 각시를 잡아먹고는 제가 만든 소외의 고독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 나라는 호랑이 이미지가 좋은 굴지의 몇나라가 아닐까 싶다. 가장 신성한 건국신화에 호랑이가 등장한 것부터가 그렇다. 우리 옛조상들은 호랑이를 호랑이라 부르지 않고 산신령 또는 산군으로, 백두산 인근에서는 노야-대부로, 신령호칭 가족호칭을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백두산의 중국쪽에서 살았던 러시아 사람 바이코프의 넌픽션 '위대한 왕'은 바로 실제있었던 감동적인 백두산 호랑이의 모성애 이야기다. 바이코프가 한국호랑이 새끼 한마리를 주워다 기르는데, 그 어미 호랑이가 그것을 알고 집요하게 추적하며 감돈다는 줄거리다. 멀리 떼어놓으면 포기할 것으로 보고 기차로 운송하는데 이 어미가 철길에 버티고 누워 기차를 급정거시키기까지 한다. 바이코프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짐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호랑이는 마음도 정도 있다"고-.
 
중국 작가 노신이 한국 사람만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할 정도로 한국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많다. 그 설화 속의 호랑이 대부분은 성묘가는 효자를 등에 업어 날라다 주었다든지 목에 걸린 비녀를 빼주었더니 그 은혜를 갚는다든지 하여 도덕적으로까지 성숙하고 있다. 그리하여 박연암은 호랑이로 하여금 인간의 위선과 부도덕을 호되게 꾸짖는 호질을 시키고 있다. 과부와 놀아나다가 벌거벗고 도망치는 부유 북곽선생이 호랑이를 만나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자 호랑이는 너같은 인육은 구역질이 나 먹지 않는다는 모욕을 준다.
 
그 도덕적이고 정도 많은 한국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지 70여년이 된다. 멸종한 것으로 알았던 그 한국호랑이가 중국 흑룡강성의 산중에서 보호사육, 명맥을 잇고 있으며 그중 한쌍이 기증되어 환향(還鄕)을 한다고 한다. 개혁풍토에 호질(虎叱)하는 상징으로서도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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