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원찬의 <묘덕선생전>이란 글에 그 샘물을 마시면 돌아버리는 광천(鑛泉)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 안에 샘이라고는 오로지 그 광천 하나밖에 없기에 나라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임금만이 궁중 샘물을 마셨기에 미치지 않고 무사했는데 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미치지 않은 임금이 미쳤다 하여 그 병을 낫게한답시고 침을 놓고 뜸을 뜨곤 하는 바람에 그 고통을 못이겨 광천물을 떠마시고 미쳐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인생만사에 있어 다수(多數)가 선이요 옳으며 가치가 있다는 허점(虛點)을 빗대는 이야기요, 소수(少數)가 다수에 굴복되는 모순(矛盾)을 빗대는 우화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맨 첫 발명품은 의회의 전기투표기였다. 앉은자리에서 버튼만 누르면 찬부(贊否)가 결정되는 편리한 이기(利器)인 것이다. 한데도 미국 의회에서는 이 이기의 설치를 거절하였다. "원치않은 기계이다. 이를 설치하게 되면 의회는 표결(票結)만이 중요시되고 토론(討論)은 꺼리게 된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은 묵살(默殺)되고 다수의사의 횡포(橫暴)가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정치란 다수의견이 소수의견을 존중-수렴하기 위해 시련(試練)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각계 각층에서 '퍼센티지 지상주의'라 하여 여론조사나 의견을 물어 퍼센티지가 높은 다수가 선이요 옳다고 보고 그에 따르는 안이(安易)한 의사결정이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현대문명의 병폐로 지적한 분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이다. 사과 좋아하는 사람이 배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다고 사과가 배보다 좋은 과일일 수는 없지 않은가.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이 보다 중요하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고도(高度)의 문명이란 다수가 소수를 버리지 않고 수렴(收斂)하는 것을 속성(俗性)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로프스의 '예수시대의 일상생활'에 보면 유태교의 최고 재판소인 산헤드린에서는 70명의 의원들이 판결을 하는데, 전원일치로 유죄를 판결했을 때는 그 판결을 유보(留保), 재심(再審)을 하게 돼있다. 행여 편견(偏見)이 개입되거나 감정이 작용했거나 소수의견이 묵살되었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유태사회에서는 반대가 전혀 없는 주장(主張)이나 시책(施策)-정책(政策)은 건전하지 못하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서양 사회가 각기 다른 여러 목소리가 어우러져 화음(和音)을 이루는 합창(合唱)사회라면, 매사에 전원일치가 선이요 소수의견을 묵살하는 우리 한국은 같은 목소리를 모아 목청만 높이는 제창(諸唱)사회이다. 실명제(實名制) 긴급명령안이 김동길 의원 단 한표의 반대로 예상했던 만장일치 가결이 무산되었다.
소신있는 반대인지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을 위한 반대인지 반대 자체를 과시하려는 인기성 반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장일치로 가결됐다는데서 파생(派生)되는 부정적(否定的) 평가(評價)를 약화(弱化)시켰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반대였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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